Quantcast
Channel: 파아란 영혼
Viewing all 1313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 앨리스 먼로 단편집

$
0
0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지음), 서정은(옮김), 뿔 




작년에 읽은 책들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줌파 라히리와 앨리스 먼로를 만난 것을 뜻깊었다고 했다. 앨리스 먼로의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읽은 지 두 달이 다 되어서야 이렇게 짧게나마 글을 올리는, 다소 불성실해 보이긴 한다. 


잔잔하고 섬세하며 부드러운 심리 묘사로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현대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 놓는 앨리스 먼로는,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지만, 종종 그 사랑은 얇은 유리잔 처럼 깨지기도 하고 향긋한 봄바람처럼 불어왔다가 거친 태풍처럼 물러나기도 한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태풍은 지나간 후이고 테이블에서 떨어진 유리잔은 다행스럽게도 깨지진 않는다. 그만큼 우리 마음은 강하고 그들의 사랑은 급작스럽게 식진 않는다. 


살아가다보면 위기란 있기 마련이고 위기 때마다 우리는 마음 졸이며 흔들리지만, 그 순간 순간은 어쩌면 생의 짜릿했던 한 순간으로 남지 않을까.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 하나하나는, 우연처럼 시작되어 마음을 흔들지만, 결국엔 일상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이미 시작된 변화에 몸을 맡기거나, 마음에는 큰 변화이나 실제로는 사소한 변화로 거쳐 그저 추억될 뿐이다. 


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이 어디 있으랴. 



나는 거짓말을 했다. 친구를 만날 약속은 없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어디가 됐건 자기 집에 가 있었다. 남자 친구는 내일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오타와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코벅의 부모님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기숙사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화를 나누거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그 누구도. 할 일도 전혀 없었다. 


한 시간 이상을 걷고 나서야 문을 연 가게를 발견했다. 나는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사 마셨다. 한 번 내렸다가 다시 데운 커피는 검고 써서 약 비슷한 맛이 났다. 딱 나한테 필요한 맛이었다. 마음은 이미 편안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행복감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혼자 있다는 사실이 주는 그런 행복감. 보도 위로 쏟아지는 늦은 오후의 뜨거운 햇살과 그 위로 흐릿한 그림자를 드리운, 이제 막 새 잎이 돋아나는 가지들. 가게 뒤쪽에서 커피를 따라 준 직원이 듣고 있는 라디오의 야구 중계가 들려왔다. 앨프리다에 대해 나중에 쓰게 될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구체적으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마치 이야기를 쓰는 일 못지않게 허공에서 뭔가를 움켜 잡으려는 시도와도 같았다. 관중들의 외침이 슬픔으로 가득 찬 심장 박동처럼 내게 다가왔다. 인간의 소리가 아닌 것같은. 기쁨이나 탄식의 소리들. 먼 곳에서 들려오는 그 사랑스러운, 형식적 소리의 파동들.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했던 것, 내가 마음을 쏟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내 삶이 바로 그런 것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 <어머니의 가구> 중에서(162쪽 ~ 163쪽) 






출처: http://www.theguardian.com/books/2009/may/27/alice-munro-man-booker-international-prize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저 | 서정은역 | 뿔 | 2007.05.05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이진명, 청담

$
0
0






* * 


한때 외우고 다녔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이 시집을 꺼내 뒤적인 것도 거의 십 년만인가. 아니면 더 되었나. 


이진명,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1992년. 


시집 첫 머리에 등장하는 짧은 시.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아미엥에서의 주장, 루이 알튀세르

$
0
0


아미엥에서의 주장 Positions(1964~1975)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지음), 김동수(옮김), 솔, 1991 








정치는 나를 열광시켰으며 나는 공산주의 투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철학 속에서 나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유물론과 그 비판적 기능, 즉 과학적인 지식의 편에 서며, 이데올로기적인 '지식'의 모든 신비화에 대항하는 기능, 그리고 신화들과 거짓말들의 단지 도덕적인 포고에 대항하여 그것에 대해 합리적이고 격렬하게 비판하는 기능이었다. - 44쪽 



* *


솔직히 말해, 이 글은 어색하다. 1991년 양장본으로 번역 초판이 나왔고 1996년 보급판 3쇄까지 나왔다. 보급판 3쇄, 내가 읽은 책이다. 내가 알기로 그 당시 보통 2,000부를 출판하였으니, 지금과 비교하여 많이 팔렸고 많이 읽혔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알튀세르가 사라졌다.


그 많던 독자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내 앞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이야기하던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강제하던 선후배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직도 그 강제의 폭력성을 떠올릴 때면 그들이 저항하던 폭력적 사회와 그들의, 갓 들어온 신입생들과 소위 운동권에 대해 관심이 없던 동료 학생들을 향한 폭력성은 닮아있음을, 그리고 결국 그들이 이 사회를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 공범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맑스의 전(全)이론, 다시 말해 맑스에 의해 확립된 과학(역사적 유물론)과 맑스에 의해 열린 철학(변증법적 유물론)은 계급 투쟁을 그 중심과 핵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계급 투쟁은 맑스-레닌주의적 노동운동의 정치적 실천에서뿐만 아니라, 이론에 있어서, 그리고 맑스주의적 과학과 철학에 있어 '결정적인 고리'다. - 69쪽 



이십여 년 전에도 읽었을 위 문장을 다시 읽으니, 참 멀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계급 투쟁은 계급 의식부터 생겨야 하는데, 솔직히 계급 의식을 만들기조차 버거운 상황이 되었다. 아니 부르조아 -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구분은 이미 호소력을 잃은지 오래다. 그래서 알튀세르는 용감하게 프로이트와 라깡을 마르크스 안으로 끌어들였는지도 모르겠구나. 



왜 철학은 단어들을 두고 서로 싸우는가? 계급투쟁의 현실은, 단어들에 의해 '표현되는' '사고들'에 의해 '표현된다.' 과학적, 철학적 추론 속에서 단어들(개념,범주들)은 인식의 '도구'들이다. 그러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철학적 투쟁 속에서 단어들은 또한 무기이고 폭탄이며 진통제이고 독약이다. 모든 계급투쟁은 때때로 한 단어의 편에 서서 다른 단어에 대항하는 투쟁 속에서 요약될 수 있다. - 54쪽 



알튀세르의 이런 면 - 이론적 실천 - 으로 인해, 그의 제자였던 랑시에르(Jacques Ranciere)는 단호하게 알튀세르의 이론을 거부한다(알튀세르의 제자들로는 에티엔 발리바르, 피에르 마슈레이, 자끄 랑시에르 등이 있다).



자크 랑시에르는 오늘 다루는 세 명의 철학자들 중 알튀세르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며, 그 스스로 고백하듯이 알튀세르의 입장에 대한 거부에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전개해나갔다. 랑시에르에게 있어 알튀세르 입장의 문제점은 정치적 행위자들이 실천하는 것은 결국 "그들 자신은 사유하거나 사유할 수 없"는 진리라는 측면에서 그것은 '엘리트주의'라는 것이었다. 정치적 행위자들로서 대중들의 능력을 불신하고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은 '사유하는 지식인 집단'과 '사유하지 못하고 생산하는 대중 집단'의 선 긋기라는 것이다. 부르주아적인 것과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의 구분, 말할 자격이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리, 교육 받는 자와 가르치는 자의 분리에 대한 저항에서 랑시에르는 '출발'한 것이다. 

- 박기순,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 새롭고 다르게 사유하다> 중에서 

출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9261 



하지만 이 작은 책, 짧은 논문들의 모음집인 이 책이 읽혀야 한다면, 그건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라는 논문 때문이다. 아마 철학 전공자보다 영화나 미디어 전공자들이 더 많이 읽었을 이 논문은 앞으로도 계속 읽힐, 꽤 시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알튀세르는 이 짧은 논문을 통해, '생산 관계들, 즉 자본주의적 착취관계들의 재생산'을 위해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이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 국가가 허용하는 폭력에 의해 기능하는 억압적 국가 장치 - 군대, 경찰 등 - 과 달리 '이데올로기에 의해' 기능하며, 종교(다양한 교회들의 체계), 교육(공적, 사적인 다양한 '학교들'의 체계), 가족, 법률, 정치(다양한 정당들을 포함하는 정치적 체계), 조합, 커뮤니케이션(잡지, 라디오, TV 등), 문화(문학, 예술, 스포츠 등)에 걸쳐 있다고 말한다(실은 그냥 이 사회 전체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결국 기존 체제는 억압적 국가 장치로 관리되면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로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유지된다. 여기에는 '개인들을 주체로서 호명하는 과정'이 포함되는데, 이는 '완전히 혼자서 활동'하도록 하면서 '종속에 의해서, 종속을 위해서만' 존재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거칠게 설명하자면, 각각의 개인들이 자유로운 주체임을 알게 되는 것은 개인들의 자발적인 각성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호명에 의해서이고 이 호명은 보다 거대한 주체(신이거나 국가이거나)에 의해서다. 즉 누군가를 불러줌으로써 개인을 자유로운 주체로 올리고 그 주체에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심는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통해 기존 생산관계는 확대, 재생산된다. 어쩌면 이러한 확대, 재생산 구조에 저항하고 해체하는 것을 알튀세르는 이론적 실천으로 여겼는지도. 





그 외의 논문들, <프로이트와 라깡>, <혁명의 무기로서의 철학>, <자본론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맑스주의와 계급투쟁>, <아미엥에서의 주장> 등도 읽을 만하다. 하지만 이런 책에 관심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싶고, 이 책은 이제 시중에서 구하기도 어려우니, 다시 번역되어 나오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그리고 이 책이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 지도 의문스럽다.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나 접근이 아니라, 그냥 정치 일반에 대한 지극히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이해를 돕는 책이면 충분해 보인다. 그 정도로 나라가 엉망이 되었으니까. 그냥 보수주의자가 보기에도 지금은 이상한 시대다. 보수라는 단어까지 부끄러운 시대가 되었으니, 마르크스주의는 그냥 신기루다. 


문제는 '보수'라는 단어인데, 이제는 그 단어가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생각할 때, 이명박 정권은 보수를 표방하고 들어선 첫 정권이었지만 독단적인 국정 운영과 부패, 비리 의혹으로 얼룩져 실패한 정권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그런 오점을 청산하고 태어난 합리적인 보수정부이기를 기대했건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봐서는 더 이상 기대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한 정권은 부패했고, 또 다른 보수정권은 무능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니 허무하다. 

- 이상돈, <<공부하는 보수>>, 책세상, 12쪽 



거참, 이런 시대에 알튀세르라니!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아래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영문 번역이다. 관심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 연구를 위한 노트 (영문 번역)



* 알튀세르에 대한 비판은 랑시에르를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E.P.톰슨은 아예 책까지 냈다.<<이론의 빈곤>>(책세상, 2013). 알튀세르에 대해 조금 웹 서핑을 해보다가 찾았다.직장인이다 보니, 이런 책이 나오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건 그렇고, 요즘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은데, ... ㅡ_ㅡ;; 




아미엥에서의 주장 - 10점
루이 알튀세르 지음/솔출판사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밀란 쿤데라, 2009년

$
0
0


밀란 쿤데라, 2009년



* * 


요즘 자주 책을 읽다 사진을 찍는다. 

밀란 쿤데라. 

나는 솔직히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너무 지적(知的)인가?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
0
0


선생님께서 강의를 위해 손수 적으신 노트를 보내주셨다. 이에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한글번역본을 주문하고 영어 번역을 구했다.


학부 시절, 강의 시간에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에 들은 바 없다는 건 죄악이다. 아무리 문학 전공이라고 해도. 학생들에게 미래가 없는 건 그 학생들의 선생들에게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지적(知的) 자극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은 종종 내가 대학 잘못 선택해 갔나 하는 생각이 든다(하긴 다른 대학엘 갔어도 마찬가지였을 듯).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을 읽으면, 꽤 우울해지겠구나. 하지만 우울(melancholy)이란, 천재들의 기질임을!!


아래에선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를 독일어 원문 - 영어 번역(the Ogden (or Ogden/Ramsey) translation) - 영어 번역(the Pears/McGuinness translation) 형태로 된 PDF 파일을 구할 수 있다.


http://people.umass.edu/klement/tlp/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공부하는 보수, 이상돈

$
0
0


공부하는 보수, 

이상돈(지음), 책세상 





서평집이다. 두껍다. 색인까지 포함하면 700페이지가 넘는다. 하지만 쉽게 읽힌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문제는 '보수'라는 단어인데, 이제는 그 단어가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생각할 때, 이명박 정권은 보수를 표방하고 들어선 첫 정권이었지만 독단적인 궁정 운영과 부패, 비리 의혹으로 얼룩져 실패한 정권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그런 오점을 청산하고 태어난 합리적인 보수정부이기를 기대했건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봐서는 더 이상 기대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한 보수정권은 부패했고, 또 다른 보수정권은 무능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니 허무하다. 

- 11쪽 ~ 12쪽  

 

그래서 이 책은 현 정권과 이전 보수 정권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어야 할 텐데,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박근혜 정권 하의 정책에 대한 언급은 가끔 보이긴 하나, 직접적이지 않다. 아마 이런저런 이해 관계 속에서 공격적인 발언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공격적인 비난 뒤에 올 여러 불이익을 감수할 자신이 없었던 듯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그냥 서평집이다. 그것도 보수주의자들이 쓴 원서를 읽고 쓴 서평집(대부분 번역되지 않았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나는 우파다'라고 했더니 내 주위의 진보좌파들이 크게 웃었다. 그러니 다들 나를 진보로 볼 수 있을 텐데(나는 늘 좌파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지만), 보수주의 저자들 일색인 이 책에 대한 문제적이고 비판적 읽기는 쉽지 않다. 실은 한국에는 보수라고 불릴 만한 이들이 있다면 도리어 '종북좌파'로 불리는 이들이 서구에서 바라보는 바, 보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보수'라고 하면 새정치민주연합 정도가 될 것이고(중도 좌파가 아니라), 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보수로 포장한 1950년대 정당같다는 느낌. 


저자들은 보수주의란 '중용과 전통, 그리고 합리성을 존중하며, 기존의 문화시스템 안에서 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생각'이라고 정의한다. 보수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진화적 변화를 추구하며,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정부 정책을 의심한다. 

- 230쪽 (Edwin Feulnet, Doug Wilson, <<Getting America Right: The True Conservative Values Our Nation Needs Today>>(Crown Forum, 2006)에 대한 서평, '올바른 보수정책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긴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책들과 저자들도 미국 공화당과 보수 정권들에 대해 공격하고 심지어 진정한 의미로 보수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니까, 한국에서 보수정당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운 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읽을 만한가? 솔직히 나는 지난 1주일 동안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아마 내 주위의 진보주의자들이 읽으면 화들짝 놀랄 만한 내용도 많다. 가령 피터 스와이저Peter Schweizer의 <<내가 말한 대로 해: 진보의 위선적 모습 Do As I Say (Not As I Do): Profiles in Liberal Hypocrisy>>에 대한 리뷰 일부를 옮겨보자.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난한 사람과 소수인종과 여성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정의로운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보수주의자들이 탐욕스럽고 환경을 파괴하며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한다. 

- 333쪽 


 한국에서도 그런가? 잘 모르겠다(여기엔 내 개인적 경험까지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인 경우 위의 인용문처럼이겠지만, 한국 사회에선 일종의 희망 사항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자본가와 군대가 움직이는 '불량배 국가'이고 이스라엘은 '중동의 악'이라고 비난해서 명성을 얻은 MIT 명예교수 놈 촘스키는 전 세계 진보좌파에게 영웅과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촘스키는 40년 동안 국방부가 MIT에 지원한 암호 개발 프로젝트로 연구비를 받아왔다. 촘스키는 자기가 자본주의의 희생자인 가난한 민중을 대변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사실 그 자신은 매우 영악한 자본주의자다. 강연료와 인세 수입으로 인해 그는 소득이 전체 미국민의 상위 2퍼센트 안에 들 정도로 부자이다. 그는 보스턴 근교 레싱턴이라는 부자 동네의 85만 달러가 넘는 호화 주택에 살고 있으며, 케이프코드에 별장도 갖고 있다. 촘스키는 흑인과 여성이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평생토록 주장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연구 스태프로는 백인 남성만 고용했다. 그는 9.11 태러 후 강연 요청이 많아지자 9,000달러 받던 1회 강연료를 1만 2,000달러로 올렸고, 변호사를 고용해서 자기가 낼 세금을 줄이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 334쪽 


내용이 선정적이어서 아마존에 뒤져보니, 표지도 선정적이다. 촘스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실생활을 까고 있다. 리뷰 평점은 나쁘지 않고 2006년 상반기에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인들도 진보주의자들(미국에선 liberals)에 이상하게 높은 절약정신과 도덕율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존 리뷰를 보니, '부자 리버럴이 보수주의자들보다 훨씬 낫다'며 이 책에 대해 별 하나를 주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은 번역되지 않는 걸까? 하긴 내 생각엔 자칭 한국에서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이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거나 다들 영어로만 책을 읽어서 그런 듯 싶다)



- 피터 스와이저의 책 표지. 유명한 사람들이 표지로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미국의 급진 세력을 대표하는 이들이 평등, 정의, 소비자 보호, 환경보호, 여성 해방 등을 내걸었지만 정작 자신들의 사생활에서는 철저하게 개인적 이익을 챙긴 위선자들이라면서, 이제 이들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와 비슷한 논지의 이야기를 어느 보수신문이 종종 게재했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정치인들도 비슷한 주장을 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 적어도 보수 쪽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보수 쪽 사람들의 윤리 수준이 더 낮기 때문이다. 

- 337쪽 



아, 박근혜 정권은 아예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 저 센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으니 말이다(그러면서 보수 정권 어떠니, 종북 좌파 이야기를 해대는 이들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이 책에 소개되는 책들 대부분은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서서 미국과 세계 정세, 미국 정치, 이슬람, 유럽, 금융 위기를 바라보고 있다. 정말 흥미롭게도 그런 책들 일색이다. 이상돈 교수가 선호하는 저자들도 눈에 보이고 책들 중에서는 서로 비슷한 논지에서 중복되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읽는 중간 가끔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소개되는 책들 대부분이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 지식인 사회에 국제 정세나 보수주의자들의 세계와는 참 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설 당시 51개였던 유엔 회원국은 1993년 무려 184개국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184개국 중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는 회원국은 75개국 뿐이니, 유엔에 속한 다수의 국가가 독재국가인 셈이다. 

- 447쪽 


아무런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는 유엔을 비난하는 책이라든가(부패했던 코피 아난에서 반기문 총장으로 바뀐 지금도 상황이 별반 나아진 듯 싶진 않지만), 세계 정치 구도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책을 소개할 때면 무능하기만 한 한국을 보며 한숨만 나온다. 


파키스탄 대도시에서는 중국 사업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터키와 중국도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중국을 방문했고, 시진핑 중국 주석은 터키를 방문했다. 중국이 터키에 원전과 항국를 건설하기로 하는 등 두 나라의 경제 협력은 공고해지고 있다. 중국과 이란과의 관계도 깊어가고 있다. 중국은 이란이 수출하는 에너지의 최대 수입국이며, 이란은 중국에 에너지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나라이다. 

- 513쪽 



중국은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을 능가할 것이고 러시아는 냉전 시대 만큼은 아니라더라도 서유럽과 미국을 긴장시킬 수 있는 파워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에 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며, 미국으로선 이런 일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군은 국가 방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유럽, 일본, 한국 등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460쪽 



미군 철수는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미국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다. 즉 공화당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민주당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다. 밖에서 쓸데없이 돈 쓰지 말고 국내 재정 적자나 줄이고 나라 살림이나 잘해라는 것이 미국 내 지식인들의 바람이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군비 축소가 이야기될 것이고 주한 미군 감축이나 철수는 미국이 먼저 통보할 것이다. 전시작전권 문제는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라면 당연히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인데, 이를 반대하는 게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이다. 그 중의 예비역 장성 한 명은 군사 기밀을 미국 회사에 돈을 받고 팔아넘겼으니..., 황당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국이 강력하게 주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 아마 주한미군 주둔비용 전체를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믿는 바 보수정권이라고 했던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미 미국 내에선 세계 여기저기서 치른 전쟁에 대한 저항이 심각하고 세계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철수는 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조지 W. 부시는 성급하고도 오만한 전쟁을 벌여서 미국의 국력을 손상시켰고, 오바마는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다음 대통령에게 정권을 물려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대외 관계에서 소극적으로 돌아선다면 이 세상 많은 곳이 보다 불안해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세계를 책임지는 '자비로운 제국Benevolent Empire' 행세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너무나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 519쪽 



그리고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이슬람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가 바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책들은 이슬람극단주의 뿐만 아니라 이슬람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정책 실패와 함께 미디어 전쟁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유대인은 졌고 이슬람이 이겼다고 진단한다. 더 나아가 서유럽 내 이슬람 인구의 증가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유럽 전체가 이슬람 지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다양성, 다원주의, 종교적 자유와 관용을 미덕으로 지키는 진보주의자들의 탓이다. 왜냐면 미국과 유럽의 진보주의자들이 믿는 이러한 미덕이 무슬림에겐 미덕이 아니며, 도리어 미국과 유럽 내에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또한 흥미롭게도 반유대주의가 서구 진보주의자들에게 넓게 퍼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또한 이슬람 세계에 대한 관용을 핑계로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지만, 유럽 정치인들과 진보주의자들 때문에 무슬림 인구는 서유럽을 장악하고 있으며, 서유럽인들이 믿는 바 그 가치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책이 두껍다 보니, 서평도 길어지는데(실은 짧게 쓸 수 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ㅡ_ㅡ;), 그냥 한 번 읽어볼 만하다는 수준에서 마무리할까 한다(아마 손에 들면 놓지 못할 것이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실은 보수주의자들의 책이 거의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 다소 놀랍고(반대로 서구 진보적 지식인들의 책은 곧잘 번역되는 것과는 반대로), 한국에서 제대로 된 보수주의가 자리잡지 못한 것이 어쩌면 현대 한국 사회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 이상돈 교수를 야당에서 영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실은 야당이 서구적 의미에서의 보수주의 정당에 가깝지만,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중도 좌파 정당이라고 오해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 문단만 옮긴다. 


우즈는 하이에크가 '호황과 버블 폭발'을 반복하는 경제 사이클의 근본 원인은 중앙 은행에 있다고 설파한 것이 정확한 분석이라고 말한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하이에크는 이자율을 낮춰서 경기 침체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하이에크는 침체Recession, 또는 공황Depression은 잘못된 투자 때문에 생긴 부작용을 교정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경제가 제 모습을 바로 찾는 것인데, 이자율을 낮추면 종국적으로 닥쳐올 붕괴Collapse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뿐이라고 오래 전에 지적했다. 

- 611쪽 



최악의 경제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한국은 몇몇 글로벌 기업에 의지한지 꽤 되었다. 지난 정권부터 유독 심해졌는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너도나도 욕을 해댔던 노무현 정부가 그나마 살만했고 이명박 정권 이후는 엉망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더 큰 일은 지금 정부에서 경기 활성화 정책으로 내놓는 것들이 원조 보수주의자라고 평가되는 하이에크가 반대한 정책들이라는 점이다. 정녕 보수 정권인가 싶다. 진보 정권은 더더욱 아닌데 말이다. 


아마 다음 정권은 정말 잃어버린 10년을 되살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되살려놓으면, 그제서야 제대로 된 입과 펜을 가지게 된 언론들이 나서서 공격을 해대며 기자라는 자존심으로 펜을 들었다며 으쓱거릴 게다. 그리고 너도나도 비난을 하는 통에 국민들도 함께 욕을 해댈 것이고,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았는가는 몇 년 후엔 다 잊어버릴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국민들의 잠재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음 정권도 계속 소위 말하는 보수 정권(미국의 관점에선 전혀 보수가 아닌)이 잡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무조건 다음 대선 때에는 야당이 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웃긴 짓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 국민들의 잠재력을 오판하고 있다. 화려하게 가짜 보수 정권이 부활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의 잠재력은 대단하다. 다들 지금 일동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 (아, 나는 정치 블로거가 아니야)


실은 한국은 정말 위험한 기로에 서 있는데,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과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정말 상황을 오판하고 있으며 한국의 미래를 진정 걱정하지 않는 듯 보이니, ... 거참, 내가 나라 걱정을 할 판인가. 이제 다시 40대 중반에 실업자 대열에 합류한 판국에. ㅡ_ㅡ;; 






공부하는 보수 - 8점
이상돈 지음/책세상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2015년 2월 눈

$
0
0





눈. 

내리다. 

그대 사랑스런 가슴 위로. 

쓸.쓸.하게 

얇게 쌓이며 

미소 짓는다. 

사랑을 짓는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잡담.

$
0
0



우연히 구한 비틀즈의 애비로드(Abbey Road) LP는 집에서만 들을 수 있는 위안이다. 어젠 임시로 있는 사무실에서 유튜브로 비틀즈의 애비로드를 들었다. 곡과 곡 사이가 떨어져 다소 불편했지만, 들을 만했다. 


유트브로 음악을 듣는 걸 몇 해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나도 그렇게 듣고 있는 걸 보면 유튜브의 콘텐츠 장악력은 실로 대단하기만 하다. 그래도 잘 갖추어놓은 오디오 시스템에 나오는 소리와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비틀즈의 애비로드를 조지 벤슨은 새롭게 편곡하여 the other side of Abbey Road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나는 CD로 가지고 있는데, 아래 동영상은 LP를 녹음한 것이다. 이런 걸 공유하는 이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시간 많은가 보다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되니... 


요즘 밀란 쿤데라의 산문집을 읽고 있는데, 역시 쿤데라라는! 같이 읽고 있는 도정일의 산문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도정일의 산문집은 약간 기대를 했는데, 많이 실망했다. 여러 매체에 실린 글들을 그대로 모아 산문집을 냈는데, 대부분 너무 짧고, 다소 편하게 쓴 듯하며, 일부는 시간에 쫓겨 쓴 듯한 느낌까지 풍긴다. 특히 매체에 쓴 글들은 시의성을 가진 글들이 대부분인데, 솔직히 지금 읽을 필요 없는 글들도 상당하니, 열정적인 독서가들에게는 추천하지 않겠다. 










아래 비틀즈의 애비로드는 실제 음반에서는 곡과 곡 사이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한 곡처럼, 물 흐르듯 그냥 넘어가는데, 유튜브에서는 끊어져 이상할 것이다. 참고하시길.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잡담2, 혹은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
0
0



"옛날엔 그렇게 생각했죠.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 언젠간 떠나 버리겠죠? 그래서 모든게 허망해요.
전엔 사랑이란 말을 중시해서 말로 해야만 영원한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하든 안하든 차이가 없어요. 사랑 역시 변하니까요.
난 이겼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 


오늘 동사서독의 한 부분을 다시 보면서 내가 왜 화양연화를 두고 싸웠는지 이해했다. 동사서독 이후 왕가위의 영화 속에서 펑펑 울거나 삶과 집요하게 싸우는 이가 사라졌다. 그냥 스쳐지나간다. 이겨도 이기지 못한다. 결국 외롭게 죽어간다. 일대종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쓸쓸하다. 심지어 "난 쓸쓸하니(널 사랑해), 네가 잡아줘"라고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십 수년 전 화양연화를 두고 영화지 기자와 말다툼을 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왜 그런 과민 반응을 보였을까 늘 궁금했는데, 오늘 벗 앞에서 우는 여인의 모습을 보니, 알겠다.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우린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 걸까. ... 참 어려운 일이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포레스트리서치가 예측한 2015년의 고객 서비스 트랜드

$
0
0



포레스트리서치 Kate Leggett의'Trends 2015: The Future Of Customer Service' 리포트 소개 자료를 한 번 정리해보았다. 고객 서비스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IoT, 인공지능, 분석, 예측 등은 고객들의 새로운 디지털 채널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과 함께 깊이 고민해볼 부분이라 여겨진다. 원래 포레스트리서치의 리포트 가격은 꽤 높긴 하지만, 해당 비즈니스를 수행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어쩔 수 없이 구입하게 된다. 아래는 소개 자료를 읽고 간단하게 포스팅해 보았다. 




Trend 1. 

Customers Embrace Emerging Channels To Reduce Friction.(고객들은 마찰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을 받아들인다) 


기존의, 전화 중심의 고객센터 대신 웹사이트를 통한 셀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바로 전화부터 하는 대신 웹에서 찾는 것이다. 이와 함께 모바일 채널이나 다양한 새롭게 등장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줄고 있는 것이다. 



Trend 2. 

Companies Will Explore Proactive Engagement.(기업들은 고객을 향한 사전 예측된 개입을 연구할 것이다)


Proactive engagements anticipate the what, when, where, and how for customers, and prioritize information and functionality to speed customer time-to-completion. (사전예측된 개입들은 고객을 위해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리고 정보와 기능을 우선순위화하여 고객들의 완료시간(구매완료)을 촉진시킨다) 



Trend 3. 

Insights From Connected Devices Will Trigger Preemptive Service. (연결된 기기들로부터 나오는 통찰들은 선점 서비스를 촉발시킬 것이다)


IoT(사물인터넷, Internet of Things)는 현실이 될 것이다. Connected Devices가 현재는 폰, TV 정도인데, 자동차, 세탁기, 주택, 건물 등등 거의 모든 사물들이 Connected될 것이고 각종 센서들은 해당 기기/사물로부터 각종 정보들을 받아 분석하여 사람이 알아차리기 전에 '지금 X를 교체하세요'(Preemptive Service)고 할 것이다. 



Trend 4. 

Knowledge Will Evolve From Dialog To Cognitive Engagement. (지식은 문답 방식에서 인지적 참여로 진전될 것이다)


They will start to explore cognitive engagement solutions - interactive computing systems that use artificial intelligence to collect information, automatically build models of understanding and inference, and communicate in natural ways. 구글에서 cognitive engagement solution을 검색하면 IBM Watson이 맨 위에 올라온다. 즉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정보를 모으고 자동적으로 기업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모아 분석, 제공하게 될 것이다. 



Trend 5. 

Predictive Analytics Will Power Offers, Decisions, And Connections. (예측 분석은 제안들, 결정들, 그리고 연결들을 활성화시킬 것이다)


고객에 대한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고객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여 제안하고 결정내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예측 분석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게 될 것이다. 



Trend 6. 

The Customer Service Technology Ecosystem Will Consolidate. (고객 서비스 기술 생태계는 통합될 것이다) 


고객 서비스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들이 하나로 융합될 것이라는 ...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크세나키스Xenakis

$
0
0



하지만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며 인간의 이성적인 냉담함을 약화하는 힘으로 간주되어 왔던) 감상벽이 단숨에 가면을 벗고 증오 속에, 복수 속에, 피를 보는 승리의 환희 속에 항상 존재하는 "광포함의 상부구조"로 등장하는 순간이 (한 인간의 삶에서나 한 문명의 삶에서) 올 수 있다. 내게 음악이 감정의 폭음으로 들린 반면, 크세나키스의 곡에서 소음의 세계가 아름다움이 된 것은 바로 그런 때다. 그것은 감정의 더러움이 씻겨나간 아름다움이며 감상적인 야만이 빠진 아름다움이다. 

- 밀란 쿤데라, <<만남>>, 123쪽 









크세나키스Xenakis의 음악을 매일 같이 듣는 건 아니다. 1년에 한 번 정도, 그것도 우연히 듣기 시작해 끝까지 듣는다. 솔직히 쉽지 않다. 밀란 쿤데라의 산문 속에서 크세나키스를 읽었고, 오늘 크세나키스 음반을 꺼낸다. 두 장으로 구성된크세나키스의 음반은 Naive의 "La Collection"시리즈 중의 하나로 출시되었다.  


두 번째 시디의 두 번째 음악은 Tetora를 듣는다.  나에게도 밀란 쿤데라가 이야기하는 '아방가르드의 속물 근성'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해본다. 




밀란 쿤데라는 '소음의 세계'라는 표현으로 소음에 가까운 크세나키스의 음악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일상의 소음은 그냥 시끄러울 뿐이지만,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더 시끄러워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마치 쇠사슬같은 소음이랄까. 무직하고 딱딱하며 두툼하게 각이 져서 귀를 무겁게 만든다. 



올리비에 메시앙은 크세나키스의 음악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이전 단계의 음악과 대립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유럽의 음악을, 유럽의 유산 전체를 우회한다. 그의 출발점은 다른 곳에 있다. 그의 출발점은 인간의 주관성을 표현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유리되었던 음이 내는 인위적인 소리 안이 아니라, 세상의 소리 안, 마음 속에서 분추로디는 것이 아니라 마치 비가 내리는 소리나 공장의 왁자지껄한 소리 또는 대중의 고함소리처럼 외부로부터 우리를 향해 도달하는 '음(音)의 덩어리' 안에 있다. 

- 밀란 쿤데라, <<만남>>, 125쪽



예전엔 라디오에서 듣거나 누군가에서 빌리지 않는 이상, 듣지 못했던 음악들도 Youtube에서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편리함 속에서 정작 내 주위엔 음악 듣는 이들이 사라졌다. 어쩌면 문화는 심심함 뿐만 아니라 어떤 불편함마저 필요한 것이 아닐지. 크세나키스가 어떤 불편함 속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그래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노력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 속물적 아방가르드가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어떤 푸른 이야기, 장 미셸 몰푸아

$
0
0

어떤 푸른 이야기(une histoire de bleu) 
장 미셸 몰푸아(Jean-Michel Maulpoix) 지음, 정선아 옮김, 글빛(이화여대출판부) 






늦가을, 잔잔히 비 내릴 때, 하늘의 흐느낌을 듣고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럴 때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착잡한 눈물을 슬레이트 지붕과 아연 홈통을 두드리는 맑디맑은 빗물에 보태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부드러운, 거의 평온해진 동작이다. 이 시각, 이 계절에, 우리는 언어를 뒤흔들지 않고, 거기에 우리 자신을 내맡긴다. 이번만큼은 그 적절함이 빗줄기의 속삭임과 유리창의 어둠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확신하며. 그 순간, 뜻이 확실치 않아 오래 전부터 밀쳐두었던 책 몇 장을 다시 읽어보고 싶으리라. 이번에는 그 감동을 되찾고 그 의미를 이해할 거라고 확신하며. 그래서 만일 펜을 들게 된다면, 무엇을 발견하기보다는 기억해내기 위해서이리라. 자신의 얼굴이 비친 수면 위로 마침내 몸을 숙이듯. 
- 144쪽
 

몰푸아의 시집을 읽으면서 작고 낮은 웃음을 천천히 흘러 나왔다. 번역 시집을 읽으며 이런 기분에 빠진 건 정말 오랜만이니, 역자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푸른 바다에 대한 끝없는 무한과 사랑, 그리고 서정성에 대한 시집이다. 감미롭고 부드러우며 읽는 이의 마음을 스다듬는다. 

아주 드물게, 좋은 번역 시집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단어들로만 구성하여 풍부한 시적 풍경을 만들고 그 속에 독자를 안내한다. 이 시집도 여기에 속한다. 아주 드문 번역 시집에. 


청명한 날이면, 난바다는 찬란히 부서진다. 

하얀 기와 얹은 하늘. 낮잠에 취한 바다가 잉크빛 기다란 상처 자국을 수평선의 뺨에 새긴다. 그곳에 돛단배들이 고요한 한길을 내고 새를 키우는 사람의 순백색 사랑을 심는다. 

수풀 넘쳐나는 정원들은 박하, 물망초, 봉숭아 향 날리며 난바다를 향해 더 높이 자란다. 페인트칠한 나무발코니에 뱃사람들의 가슴이 물거품처럼 튀어오르면, 라일락 꽃잎 술렁이는 소리가 바다로 곤두박질친다.

바다의 대기실에서 보낸 어느 여름날 일요일. 드리워진 커튼이 조금 벌어져 있다. 불빛이 깜박인다. 바다의 투명한 물결이 왁스 칠한 가구와 종이 위로 흐르며 잔잔히 흔들린다. 출범을 앞둔 빈약한 함대 한 척. 그리고 물살 위의 배처럼 살랑대는 한 편의 시. 알 수 없는 욕망 하나 눈을 뜬다, 아니 잠든다. 난바다를 향해 문들이 살짝 열리다 이내 다시 닫힌다. 몽상에 젖은 자, 손가락을 푸르름에 적시면 그의 몸은 이윽고 모래가 된다. 
- 16쪽 


시의 제목처럼 첫 문장 하나가 떨어져 나오기도 하고, 아예 없기도 하다.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서사적인 테마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짧은 시들이 모여 어떤 지향을 가지긴 하나, 이는 비평가에게 맡길 일이니, 우리는 그저 읽으며 조용해질 뿐

'무한은 인간의 문제'라고 여기는 몰푸아는 이 시집을 통해 자신만의 시론(詩論)을 펼쳤는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론인가! 


http://www.maulpoix.net/ (장 미셸 몰푸아의 홈페이지. 프랑스어로만 구성되어 있음)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인용된 폴 발레리의 문장. 






어떤 푸른 이야기 - 10점
장 미셸 몰푸아 지음, 정선아 옮김/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노산군(魯山君), 자규시(子規詩)

$
0
0


오규원의 <가슴 붉은 딱새>(문학동네, 1996년 초판)을 꺼내 읽는다. 그리고 늘 생각나는 시 한 편을 옮긴다. 우리에게는 단종으로 알려진, 노산군이 17세 지은 시(詩)다. 



원통한 새가 되어서 제궁을 나오니

외로운 그림자 산중에 홀로 섰네

밤마다 잠들려 해도 잠 못 이루어

어느 때 되어야 이 한 다 할꼬

두견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은 밝은데

피눈물 흘러서 봄꽃은 붉다

하늘도 저 애끓는 소리 듣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시름에 찬 내 귀에는 잘도 들리는고

- 노산군(魯山君), <자규시(子規詩)>, 1457년. 



17세의 사내가 지은 시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1996년 이 시를 읽고 한참 울었다. 문득 이 시를 읽으며, 그 때의 상념에 젖는다. 이 시를 짝사랑하던 여대생에게 보내주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무모한 짓이었구나. 시인 오규원 선생님이 작고한 지도 이제 꽤 되었구나....  



17세는, 서툰, 그러나 피가 붉고 가슴이 뜨거운 시인의 나이이다. 더욱 16세기의 17세는 지금과 달라서 자식이 하나쯤 있을 수 있는 나이이며, 과거에 급제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더구나 노산군은 한 나라의 왕이었다가 강봉되어 귀양온 사내다. (... ...) 아, "피눈물 흘러서 봄꽃은 붉다(血流春谷落花紅)"니! 정말 그가 시인이었을까, 아니면 비극이 그의 얼굴을 빌려서 참담하게 아름다운 한 시구를 역사 속에 편입시킨 것일까? 

- 오규원, <가슴 붉은 딱새>, 41쪽에서 





***



자규시 원문


一自寃禽出帝宮 

孤身隻影碧山中 

假眠夜夜眠無假 

窮恨年年恨不窮 

聲斷曉岑殘月白  

血流春谷落花紅 

天聾尙未聞哀訴 

何乃愁人耳獨聰 


출처: http://www.sungyoung.net/oldstory/jagyusi.html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만남, 밀란 쿤데라

$
0
0


만남 Une Rencontre 
밀란 쿤데라(지음),한용택(옮김), 민음사 



1. 
에밀 시오랑(치오란), 아나톨 프랑스, 프란시스 베이컨,  셀린, 필립 로스, 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 .... 밀란 쿤데라가 만난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 이 산문집은 편파적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낯선가는 경험해본 이만이 알 수 있으리라. 좋아한다는 그 고백이 다른 이들과 나를 구별짓게 만들고 나를 일반적이지 않은, 평범하지 않은, 결국 기괴한 사람으로 만드는가를.  
 

그리고 치오란은 어떤가! 내가 그를 알게 된 시절부터 그가 한 것이라고는 인생의 황혼기에 블랙리스트에 자리 잡기 위해 이 리스트에서 저 리스트로 돌아다니는 일 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프랑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징낳아 그의 앞에서 아나톨 프랑스를 언급했을 때, 그는 내 귀에 대고 짖궂게 웃으면서 속삭였다. "여기서는 절대로 그 이름을 큰 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당신을 놀릴 거예요!"라고 말이다. - 71쪽 

  
에밀 시오랑과 아나톨 프랑스를 알고 읽어본 이만이, 그리고 밀란 쿤데라를 알고 있는 이만이 위 문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독자는 한정되어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독자의 수는 줄어들 테지. 


  

- 이 책에서 언급되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인터뷰는 이 책에서 나온 것이다.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인터뷰인데, 얼마 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 에밀 시오랑의 책은 3권이나 번역되었다. 허무주의적 아포리즘으로 유명한 에밀 시오랑은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로 온 이후 루마니아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어로 작품을 활동하다가 죽는다. 20세기 프랑스 문필가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를 구사한 몇 되지 않는 이로 손꼽히지만, 번역된 책에서는 이를 온전히 느낄 수 없고 다만 그의 도저한 허무주의만 알 수 있을 뿐이다. 



2. 
"한 쪽에는 그 어떤 열정도 생기를 불어넣을 수 없는 무관심한 사람들, 소심한 사람들, 이성적으로 사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감정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논증은 거의 이해할 수 없어 보이며, 감성으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후자들은 늘 유죄를 선고하곤 했다."
- 아나톨 프랑스, <신들은 목마르다> 중에서 

아나톨 프랑스의 장례식이 프랑스 국장(國葬)으로 치러지고 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나톨 프랑스에 대한 기묘한 침묵에 대해, 심지어 아나톨 프랑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시대에 뒤쳐지고 취향이 이상한 사람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 밀란 쿤데라는 아나톨 프랑스를 인용하며, 프랑스 지식인들의 감정적인 비판을 꼬집는다. 

하지만 비단 프랑스 지식인만 그럴까. 위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한국의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을 떠올렸다(실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마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논증하는 듯 싶지만(왜냐면 현란한 이론가를 인용하거나 뭔가 그럴싸한 주의, 주장으로 언어를 구사하기에), 결국엔 감정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판단내리니까. (그리고 한국의 보수적이라는 지식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한국엔 보수란 없다. 보수적 지식인이라고 하는 이들 대부분 한국에선 진보적이라고 봐야할 수준이다) 


3.
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은 위대한 유럽 소설가이다. 그의 예술에 첫 번째로 영감을 준 것은 사회적 또는 역사적 호기심이 아니고, 지리적 호기심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실존적 추구이며 진정한 실존적 치열함이고, 이 덕분에 그의 소설은 (내 생각으로는) 소설의 현대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정중앙에 자리를 잡는다. 

바로 인간은 자신의 나이 속에서만 존재하고, 모든 것은 나이와 함께 변한다는 점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가 지금 먹어가는 나이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나이의 수수께기, 오직 소설만이 밝힐 수 있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다. - 49쪽 


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Gudbergur Bergsson)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싫어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의 글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름들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가령 크세나키스! 


    

- 베르그손이 표지로 나온 책. 그리고 그의 소설, <백조 The Swan>의 영역본 표지. 




4. 
이 책은 밀란 쿤데라의 산문집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한 글에서 시작해, 그가 아끼는 몇 권의 소설과 소설가들, 아나톨 프랑스가 프랑스 지식인들의 작가 리스트에서 기묘하게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한 조소, 지금은 사라진 체코, 프라하의 봄, 망명한 체코 지식인들에 대한 이야기, 크세나키스, 야나체크와 쇤베르크의 음악, 말라 파르테의 소설에 대해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즐거운 이유는 바로 아래같은 이유다. 바르트를 좋아하냐는 프랑스 젊은이의 물음에 대해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좋아하죠.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요! 카를 바르트를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부정신학의 창시자 말예요! 천재예요! 바르트가 없었다면 카프카의 작품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걸요!" - 69쪽 

밀란 쿤데라는 그 젊은이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에 대해 묻고 있음을 알지만, 카를 바르트(Karl Barth)를 이야기한다. 카를 바르트를 모를 그 젊은이를 위해 카프카를 살짝 언급하면서 '너랑 더 이상 이야기하기 싫어'라며 속내를 비친다. 이 얼마나 현란한 거부인가! 


5. 
고백하건대, 내가 현재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밀란 쿤데라다. 내가 얼마나 그를 좋아하는지, 이 짧은 산문집을 읽으면서 다시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 김승옥, 르 클레지오, 뒤라스, 주제 사라마구, 이탈로 칼비노를 지나, 밀란 쿤데라.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체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가 아무리 불어로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에밀 시오랑이 루마니아 사람이듯. 그래서 번번히 후보로만 언급될 뿐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보다 한참 문학성이 떨어지는 모디아노가 받는 그 문학상을 말이다. 일본의 하루키가 받게 된다면, 아, 밀란 쿤데라는 어쩌란 말인가. (내가 알기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는 사무엘 베케트가 유일한 듯 싶다)  하긴 20세기 후반 가장 위대한 소설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도 받지 못했으니. 좀 우습긴 하다. 

 




만남 - 10점
밀란 쿤데라 지음, 한용택 옮김/민음사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프랑소와 르네 드 샤토브리앙 Chateaubriand의 책들

$
0
0



"오늘의 내가 이루어진 것도, 내 일생동안 이끌고 다녀온 이 권태에 처음으로 전염된 것도, 나의 고통이요 나의 쾌락인 이 슬픔에 물든 것도 콩부르의 숲에서였다. 그 곳에서 나는 내 가슴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다른 가슴을 찾아헤맸다. 그 그곳에서 나는 내 가족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그 곳에 그의 이름이 복권되고 집안의 재산이 쌓이기를 바랐다. 시간과 혁명이 씻어간 또 하나의 악몽. 여섯 형제 중 남은 사람은 셋. 형과 쥘리와 뤼실은 이제 없고, 어머니는 고통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재는 무덤 속에서 파헤쳐졌다."


"혹 나의 작품들이 내 죽은 뒤에 남게 되고 내가 이름을 남기게 된다면 어느 날 <회고록>의 인도를 받아 어떤 여행자는 내가 그린 장소들을 찾아오리라. 그는 성(城)을 알아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거대한 숲은 찾아도 없을 것이다. 내 꿈의 요람은 사라져버렸다. 바위 위에 홀로 서 있는 성탑만이 그 종탑과 사귀고 폭풍으로부터 그를 보호하던 옛 친구들인 거대한 참나무 숲의 죽음을 울고 있으리라. 그 성탑처럼 홀로 남은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해주고 나를 보호해주던 내 가문이 내 곁에서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인생은,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낸 성탑들처럼 견고하게 땅 위에 지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그의 손으로 세운 성만큼 폭풍에 견디지 못한다." 

- 샤토브리앙(Francois-Rene de Chateaubriand) 


* * 


김화영의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에서 인용된 샤토브리앙의 글이다.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대단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샤토브리앙이지만, 다른 나라로의 소개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듯 싶다. 그의 대표작인 <아탈라>, <르네>는 번역되었으나, 현재는 품절이고. 




아딸라 - 르네
샤또브리앙 저/신곽균 역

영역본을 찾아보았으나, 3권 정도 검색되었다.



 

- 샤토브리앙, <Atala / Rene>



- 샤토브리앙, <무덤 너머로의 회상Memoirs from Beyond the Tomb>



읽고 싶은 건 역시, <무덤 너머로의 회상>이다. 학생 시절이었다면 어떻게든 불어로 읽으려고 했을 텐데, 돌이켜보니, 영어라도 제대로 해놓고 불어공부를 할 걸 하는 후회가 앞선다. 지금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영역본을 찾아보고 있으니. 


프랑소와 르네 드 샤토브리앙. <무덤 너머로의 회상>은 30년 걸쳐 씌여진 회고록이다. 소설가이자 외교관이었으며 1786년에 태어나 1848년에 죽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프랑스 귀족의 몰락, 프랑스 대혁명, 왕정복고, 나폴레옹 ... 격변기를 보냈고, 그 이야기들이 <무덤 너머로의 회상>에 담긴 것이다. 이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지금 샤토브리앙을 읽는 독자들은 많지 않다. 


위에서 소개한 책들 말고 국내 번역된 책들이 있으나, 발췌번역이거나 요약본이라 다소 부족해 보인다. 


* *


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 보게 된 정보 하나, 언어 사용인구로 따져, 한국어가 13위였는데, 순위에 민감한 사람들이 한국어의 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읽었는데, 실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어로 된 양질의 정보가 얼마나 많고 이 정보들에의 접근이 얼마나 쉽고 편리한가다. 따져보면 한국어로 구할 수 있는 양질의 정보는 많지 않다(영어와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긴 하나, 비교는 늘 최고와 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이 사회에 조금이나 기여한 게 있다면, 한국어로 된 정보에 이 블로그가 조금의 도움이 되었다는 것밖에 없는 듯해 좀 씁쓸해졌다. 


정부 차원에서 한글 번역 - 여기에는 외국 서적에 대한 번역 뿐만 아니라 한문으로 된 국문학 서적에 대한 번역도 포함되어야 한다 - 에 대한 다양한 공적 사업이 진행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늘어나야 한다,고 적어보지만, 그게 가능할까 싶다. 기업은 돈 되는 일에 매진하고 정부는 지금 당장 돈이 되지 않고 나중에도 돈이 되지 않으나,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기초 사업에 힘을 써야 한다,고 적어보지만, 이 나라 정부 관료나 정치인이 이런 이야기 한 적을 본 적도, 읽은 적도 없다. 


쓸데없이 글이 길어졌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2015년 콘텐츠 시장 트렌드

$
0
0


최근 회사를 그만 두고 이런저런 모색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사람에만 집중했다. 조직 역량이라든가 리더십, 팀웍에 대해서. 그러는 동안 회사에서 집중하고 있는 서비스에만 신경쓰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선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터라, IT나 콘텐츠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다. 거시적 환경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는 건 회사 생활하고 있는 이들은 다들 공감할 것이다. 


아래 글은 <2014년 국내콘텐츠산업 결산 - 통계결과와 트렌드>(윤호진(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정보팀장), 2015 제 5차 창조산업 전략 포럼, 대한민국 콘텐츠산업, 2015년을 전망하다 발표 자료)에서 발췌 정리한 글이다. 이런 포럼이 하고 있는지 조차 몰랐으니, 한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설립 당시 해당 기관이 발주한 문화콘텐츠 관련 컨설팅 프로젝트까지 수행했다는 게 무색해진다.  


발표 자료에는 콘텐츠 산업 관련 통계 자료와 함께 10대 트렌드도 함께 있다. 다들 아는 이야기이겠지만, 정리해두면 좋을 내용이다. 발표 자료에서 인용한 것은 박스로 표시하였다. 



1. 스마트 핑거 콘텐츠, 손가락이 문화를 지배하다. 

   - 간편한 디바이스가 만들어내는 간결한 콘텐츠. 

   - 10분 내외의 짧은 영화나 드라마, 웹툰처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낵컬쳐(snack culture) 콘텐츠의 인기 


'스마트 핑거 콘텐츠' 단어가 좀 어색하지만, 모바일 디바이스에 맞는 콘텐츠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되어 그냥 일상화될 것이다.  


2. 창조력의 샘, 스핀오프 제작의 재점화 

   - 기존 드라마, 영화, 책 등의 등장인물이나 상황에 기초해 새로운 이야기 창조 


스핀오프 제작이라는 단어를 처음 본다.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관계다. OSMU와 달리, Storytelling의 확장이 될 것이다. 스핀오프 제작과는 다르지만, 일본의 장르 소설가 오노 후유미의 <십이국기>라는 소설에서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 속의 주요 인물에 대해 각기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3. 뉴 노멀 시대, 복고와 일상 콘텐츠에서 길을 찾다 

   - 뉴 노멀: '저성장, 저소득, 저수익률 시대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 

   - 콘텐츠 산업에서도 저성장의 영향으로 복고/일상 콘텐츠 등이 인기 양상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단어가 2010년 다보스포럼에서 언급되어 유행하였는데, 다시 보게 된다. 과연 새로운(New)가에 대해선 이견이 있겠지만, 저성장, 저소득, 저수익률 시대에 맞는 무언가가 필요하긴 하다. 



4. 축적된 데이터 분석의 힘, 데이터마이닝에서 마인드마이닝까지. 

   - 데이터 마이닝을 통한 마인드 마이닝(Mind Mining)

    잠재 소비자 관련 방대한 데이터 분석

    소셜 미디어 분석을 통해 특정 지역, 연령대 소비자 선호파악

    기획/제작/배급/마케팅 등에 활용 


대기업 계열 콘텐츠 관련 기업에선 이미 해왔던 일이다. 이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문화는 다양성을 먹고 산다. 이러한 데이터 분석과 마이닝을 통해 돈이 되는 콘텐츠 제작에만 집중되고 돈이 되지 않으나 문화 다양성에 기여할 좋은 콘텐츠 제작에는 무신경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5. 스마트 디바이스와 콘텐츠의 접목, 영역과 경계를 허물다 

   - 콘텐츠 '융합'과 '콜라보레이션'을 넘어 신개념 콘텐츠 생산의 시대

          기존의 콘텐츠가 스마트디바이스에 적합하게 진화된 신개념 서사 콘텐츠 

  - '터치'로 대변되는 모바일기기 진화는 포화단계 도달, 웨어러블 기기 실용화

         구글(구글글래스), 애플(워치), 페이스북(오큘러스 리프트), 삼성(기어 VR), LG(G Watch), MS(band), 소니(HMZ) 등 



Sony HMZ 


혹시 우리가 잊고 있던 콘텐츠/장르가 있지 않을까? 디바이스/기술의 발달은 전혀 예상치 못한 콘텐츠를 킬러 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

 


6. 지킬&하이드, 기회의 나라 중국의 역습 

   - 기회 : 중국 경제(7%) 및 콘텐츠 산업(10.9%) 고성장 

           한중 FTA 체결 및 한중 콘텐츠 공동 펀드 조성(2,000억)

   - 위협 : 중국 내 콘텐츠 시장 규제 강화  

           중국 자본의 콘텐츠 시장 잠식 - 초록뱀미디어 인수, 텐센트의 게임사 투자 등 

           작가, PD 등 핵심인력 중국 진출 



최근 중국 자본의 국내 기업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나 의견을 자주 읽는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혹시 반-자본주의자 아닌가? 국내 자본의 중국 투자에 대해선 긍정적이고 중국 자본의 국내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가? 애국심에 호소하던 시대는 지났다. 자본은 돈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7. 한류콘텐츠의 후방효과, 역직구 활성화 

   - 한류 파급효과: 문화콘텐츠 수출시 소비재 수출 412% 증가 

   - 한류팬 타깃 글로벌 인터넷 쇼핑몰 개장 

   - 한-중 FTA 타결로 양국간 교역장벽 낮아져 역직구 활성화 전망 


솔직히 한류콘텐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데 .... 



8. 소유에서 접속으로, '플로우' 소비스의 진화 

   -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폭발적 성장에 따른 본격 '플로우' 소비시대 진입 

   - OTT(Over The Top) 및 음원스트리밍 서비스 급성장에 따른 미디어산업 지각 변동 



아마존이 국내 진출을 공식화했고 넷플릭스(Netflix)도 국내 진출한다고 한다.한국 콘텐츠 시장은 자국 콘텐츠 점유율이 높아서 어떻게 될 지 두고 봐야겠지만, 국내 동영상 스트리밍 웹사이트가 다 죽고 유튜브만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9. 정보사회의 역설, 콘텐츠 큐레이션 

   - 정보 과잉, 콘텐츠 홍수 속 '선택장애'에 빠진 형태인. 

   - 영화, 웹툰 등 장르별 콘텐츠를 추천하는 웹서비스 확산: '왓차', '라프텔' 등 



콘텐츠 큐레이션이 필요하지만, 실은 이젠 콘텐츠 큐레이션도 너무 많다. 콘텐츠 큐레이션이 아니라 내 소중한 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줄 콘텐츠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아닐까. 요즘 시대는 너무 정신없다. 



10. 옴니채널 전성시대, 광고와 유통 시장의 격변 

   - 옴니채널: 온라인, 오프라인 등 다양한 경로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소비자 중심으로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하는 서비스 체계 

   - 모바일 IT 발달 온오프 구분없이 양방향 마케팅 및 구매 가능 

   - NFC, 비콘(Beacon) 도입 후 매장 접근 및 진입 단뎨에 따라 개별화된 마케팅 활동 펼침. 



옴니채널은 콘텐츠 업계 뿐만 아니라 리테일, 마케팅, 디바이스 제조 등 거의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력은 급속도로 커질 것이다. 그리고 향후 사물인터넷과 결합되어 더 강력해질 것이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대척점의 항구(Port of Reflections)

$
0
0

Leandro Erlich 레안드로 에를리치

Port of Reflections 대척점의 항구

2014. 11. 4 - 2015. 9. 1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박스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2014 




2012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의 전시 이후 다시 만나는 레안드로 에를리치다. 197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인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2001년에 이미 베니스 비엔날레에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가로 참여했다. 이십대 후반에 이미 그는 아르헨티나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른 셈이다. 2005년에 다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고, 2000년에는 휘트니 비엔날레, 2001년에는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이른 나이에 세계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이번 국립 현대 미술관에 전시된 <대척점의 항구>는 그간 그가 보여주었던 공간의 착시 효과를 통한 물리적 환경의 변화, 경험, 그리고 관람객의 놀라움 등을 느끼기엔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이전 송은아트스페이스는 낮은 천장의 실내 공간에서의 전시라는 점에서 작품은 좋았으나, 관람객의 극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힘에 부쳤다고 할까.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규모있는 작품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다고 해야 할까. 하긴 형편없는 작품이라도 규모에서 압도하면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파리 오르세 미술관 1층을 가득채운 19세기 후반 아카데미 미술 작품들을 떠올려 보라.이 작품들을 보며 흥분하는 관람객들이란!!)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모습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모습



위 사진들은 전시 공간 아래서 위로 본 모습이다. 그런데 저 위에서 아래를 보면 어떤 모습일까?(전시를 관람하면서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안내를 받지 못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leandroerlich.com.ar/ 


위에서 본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대척점의 항구>는 이런 모습이다. 그러니 반드시 위로 올라가서 두 개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봐야만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 <Swimming Pool>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풀장 아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 http://whenonearth.net/the-swimming-pool-by-leandro-erlich-in-kanazawa-japan/ 



그리고 아래에선 이런 모습이다. 아, 이건 풀장이 아니다. 



출처: http://twistedsifter.com/2012/08/fake-swimming-pool-illusion-by-leandro-erlich/ 


실제 물은 약 10cm정도만 채워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물 아래 투명한 유리가 있고. 위에서 아래로 보면 영락없는 풀장이지만(실제 물인가 하고 만져보는 사람들도 있다), 아래에서 위로 보면 이건 뭐랄까. 



아래 작품은 2013년 런던 건축 페스티벌에서 전시된  <Dalston House>다.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Batiment>이라는 이름으로 최초 전시된 이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초대 전시되는 듯 싶다. 


아래 작품 사진을 보자.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약 45도 정도로 기울어진 거대한 유리를 통해 시각적 착시 효과를 노린 설치 작품이다. 아이디어도 흥미롭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관람객들의 반응이다. 



출처: http://www.dezeen.com/2013/06/26/dalston-house-by-leandro-erlich/ 


아래는 2004년 파리 전시 모습이다. 


출처: http://www.artforworldexpo.com/InitialProject/works_27_LeandroErlich.html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관람객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여기에 참여한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의 전시 설명을 읽어보자.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유망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서울관의 중심 공간인 서울박스의 공간적 특성을 반영한 신작 <대척점의 항구 Port of Reflections>을 선보입니다. 아름다운 항구로 변신한 서울박스 공간을 부유하는 선박들과 가로등은 거울처럼 맑은 수면 위에 반사된 물그림자와 함께 환상적이며, 초현실적인 풍경을 보여줍니다. 현실과 환영, 실재와 가상이 절묘하게 결합된 풍경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경험할 수 있는 이 작품은 (...) 순수한 시각적 호기심을 유도합니다. 



위 전시 설명은 이번 전시 작품 이외에 이 글에서 언급한 두 작품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일관된 테마로 10년 이상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올 9월까지 이어지니, 한 번 가서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작품 이미지 및 자료 참고)

레안드로 에를리치 홈페이지 : http://www.leandroerlich.com.ar/ 

Dalston House by Leandro Erlich http://www.dezeen.com/2013/06/26/dalston-house-by-leandro-erlich/ 

Leandro Erlich http://en.wikipedia.org/wiki/Leandro_Erlich 

http://www.artforworldexpo.com/InitialProject/works_27_LeandroErlich.html 

http://momaps1.org/exhibitions/view/207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원 맨즈 독, 조지수

$
0
0

원 맨즈 독
조지수(지음), 지혜정원 


매우 적절했다. 아니 탁월했다는 표현이 좋을까. 산문집을 좋아하지만, 그건 문장이나 표현 때문인 경우가 많다. 실은 그게 전부다. 하지만 진짜 산문집은 그런 게 아니다. 적절한 유머와 위트, 허를 찌르는 반전, 비판적 허무주의, 혹은 시니컬함, 그러면서도 잃어버리지 않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혹은 의지. 그리고 지적이면서 동시에 풍부한 감성으로 물드는 문장. 


<원 맨즈 독>은 그런 산문집이다. 읽으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 인터넷 서점의 리뷰들을 보았는데, 온통 찬사 일색이라 무안해졌다. 


대자적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 인간의 독특한 조건이다. 지성이라고 말해지는 것이 세계와 나를 가른다. 나는 자연에 뿌리 내리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다. 그러고는 나의 존재 의의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자유와 의문은 동전의 양면이다. 선과 악을 알게 되고 낙원에서 나오는 순간 자유가 얻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독립된 존재로서의 나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인간은 독립의 대가로 실존적 고뇌를 겪는다. - 100쪽 


이런 문장은 철학책에서나 나올 법한데... 하긴 이런 문장이 나오는 철학책을 본 적도 없었다. 자신의 산문에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작가는 거의 보기 드물 테니 말이다. 


영국이 가장 먼저 근대 국가로 진입하여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동기는 그들에게 정치적 지혜가 있었고 이것은 당시에 영국시민 계급과 귀족들이 상당히 지성적이었던 덕분이었다. 볼테르가 본 바 영국에서는 지붕 수리공도 이미 하원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무식하고 무교양하면 어리석게도 양보를 모르고 고집 불통이 되고 만다. 공동체에는 자기와 동일하게 생존과 번성에의 요구를 가진 상대편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만다. - 215쪽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지적인 비꼼이라고 할까. 그러면서 유머를 잃지 않는다. 아마 근사한 독서가 될 것이다. 무릇 산문집은 이래야 된다. 



원 맨즈 독 One Man's Dog - 10점
조지수 지음/지혜정원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편안함의 배신, 마크 쉔/크리스틴 로버그

$
0
0


편안함의 배신 Your Survival Instinct Is Killing You
마크 쉔 & 크리스틴 로버그 (Schoen, Marc, Ph.D./ Loberg, Kristin) 지음, 김성훈 옮김, 위즈덤하우스 



올해 초 미친 듯이 읽은 책 한 권이 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다음, '현대인이라면 아,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책이 바로 <편안함의 배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당신의 생존 본능이 당신을 죽이고 있는 중이다 Your Survival Instinct Is Killing You>다. 
(1-2년 전부터 번역서적 시장에 '배신'시리즈가 유행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뭔가 사회학적인 함의가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두 제목 다 책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만, 원제가 더 나아보인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환자가 그 어느 때보다 늘어난 것이 하나도 놀랍지 않다'

우리는 종종 왜 현대로 올수록 정신병 환자가 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ADHD의 경우, 최근 들어와서 언론 매체에 등장했다. 예전에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거나 거의 없었던 건 아닐까?). 여기에 대해선 많은 가설이 있을 수 있다. 의학 산업이나 의료 관련 시장의 급팽창으로, 또는 정신과 의사가 늘어서, 정신병이나 정신병원 자체가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관계로, 자본주의의 심화와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생명을 진짜로 위협하는 위험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생존 본능에 의해 강화되는 이 투쟁-도피 본능은 점점 더 활개를 치고 있다. 별 것 아닌 상황에도 생존 본능이 자극 받는 일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우리 내면의 편안구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45쪽) 


즉 생존 본능(survival instinct)에 의해 우리 내면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책 서두에 사례로 등장하는 폭식증 환자 케이트는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일상 속의 불안감으로 인한 폭식이었고, 무언가 먹고 난 후 그녀는 안전하고 온전한 상태가 되었다. 그녀의 생존 본능은 그녀의 의사(이성)와 관계없이 살고자 먹는 것이다. 실제로는 음식이 필요없는 상태였으나, 원시 고대로부터 우리 속에 숨겨져 있던 생존본능은 케이트로 하여금 살아남기 위해 먹으라고 강요하고 먹은 후 케이트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편안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존본능과 관계하는 뇌의 부분이 바로 변연계다. '변연계는 두려움, 안전, 고통, 쾌락, 아픔, 분노 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원시적 감정과 신체 반응으로 즉각적인 반응'(47쪽)을 보인다. 

가령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PTSD) 환자는,

이들의 뇌가 논리, 이성, 지적인 측면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이 오면 이들은 변연계의 지배를 받고, 변연계는 마치 아기가 자동차 운전대를 잡은 것처럼 통제권을 함부로 휘두르며 생존본능을 각성시킨다. (97쪽) 

이런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동요(aditance)하고 불편(discomfort)하는 상황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존본능은 특정 증상- 가령, 폭식같은 - 을 만들며 이를 대처하고자 나쁜 부적응 습관을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를 '조건화된 무기력'이라 표현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조건화되는 예를 들어보인다. 심지어 계절성 우울증 환자의 상당수가 일조량이 많은 곳에 가더라도 계속 우울증이 걸린다는 것은 우리의 생존 본능이 얼마나 조건화에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라 할 것이다. 


외재화(externalization)란 우리가 외부의 영향에 점점 더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과정이자, 내면적 기준을 희생하고 그 대신 더욱 더 많은 힘과 가치를 이러한 외부적 기준에 내어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내면적 기준이란 간단히 말해 우리의 정서적, 신체적 건강과 우리의 핵심 신념 등이다. 하지만 외재화가 일어나면 우리의 행동과 선택이 우리의 핵심 자아에 의해 결정되기 보다는 오히려 외부의 영향력과 기대에 휘둘리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자아의 진정한 뜻에 어긋나는 목표를 추구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고, 우리 내면의 자아는 더 크고 단호한 목소리로 '이게 아냐!'라고 비명을 질러댄다. 결국 외재화 때문에 동요와 불편의 수준이 올라가고, 생존 본능이 자극을 받는 역치(値)가 나아지는 것이다. (151쪽)

 
나는 생존 본능의 변화가 전자레인지의 발명, 그리고 패스트푸드와 가공음식의 인기 증가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 이런 변화로 엄청나게 편해지기 했지만, 그 덕에 우리는 조금만 배가 고파져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153쪽) 


현대 문명은 우리로 하여금 편안함에 길들이고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쌓이는 불편함의 경험들이 결국 얌전하게 있던 우리의 생존본능을 일깨우는 것이다. 책 후반부는 이렇게 변화된 환경 속에서 불편함과 더불어 살아가며, 불편함이 궁극적으로 우리 힘의 원천이 되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자신감은 성공을 통해서도 오지만, 불편을 견디는 능력에서도 온다고 생각한다. (270쪽) 

정말로 중요한 것은 두려움과 불편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로빈씨의 경우 불편을 회피하기 보다는 오히려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불편이야말로 성공에 이르는 궁극의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271쪽) 


이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사례들과 최근의 연구 성과나 이론들을 제시하며, 읽는 독자들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현대 문명 자체가 병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편안함의 배신 - 10점
마크 쉔 & 크리스틴 로버그 지음, 김성훈 옮김/위즈덤하우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죽은 전원시, 세자르 바예호

$
0
0




죽은 전원시 




지금 이 시간에 

내 안데스의 사랑하는 동심초와 앵두 같은 리타는 뭘 하고 있을까;

비잔티움은 날 질식시키고

내 몸속엔 풀어진 코냑 같은 피가 잠을 청하는데.


하얀 오후에 속죄의 자세로 옷을 다리던

그녀의 손들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 비가, 내 삶의 의욕을 앗아가는 비가,

가없이 내리는데.


그녀의 플란넬 치마랑 무슨 상관일까;

그녀의 열망; 그녀의 걸음새;

달콤한 사탕수수에 바친 노동.


문에 기대어 황혼 한 줄기를 바라보고 있겠지.

마침내 떨며: "이런 ...... 오늘은 정말 춥구나!"

한 마리 야생의 새도 울겠지, 기왓장 위에서. 


- 세자르 바예호 지음, 구광렬 옮김 



세자르 바예호César Vallejo의 시다.  20세기 남미 최고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 독자에겐 생소하다. 나도 십수년 그의 이름을 르네 샤르를 사랑하는 소설가가 쓴 어느 프랑스 소설에서 '세자르 발레조'로 읽었다. 그 이후 잊고 지내다 노트 정리 중에 그를 발견하곤 번역된 시집을 찾았다. 


잠시 집에서 쉬는 어느 아침, 그의 시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내 삶의 의욕을 앗아가는 비가 내리지도 않는데, ... 이미 사랑은 지나가 잊혀졌는데, ... 세상은 이미 어두워져 포기만이 남았는데, ... ... 그런데도 왜 울컥했던 걸까. 


그래, "이런 ... ... 오늘은 정말 춥구나!" 




세자르 바예호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Viewing all 1313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