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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늦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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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늦은 밤. 





25층 아파트 옥상으로 맨 발의 여자가 눈이 풀린 채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치킨 배달원한테서 전해들었다. 

... ... 

그리고 우리에겐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는 걸 알았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 ... 

그리고 결국 나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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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있는 가을

잔혹연극론, 앙토넹 아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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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연극론 
<원제: Theatre et son Double(연극과 그 이중)> 
앙토넹 아르토 Antonin Artaud 지음, 박형섭 옮김, 현대미학사 



이젠 1년에 연극 한 편 보기 어려워졌다. 연극이 아직 살아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한 때 연극 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소설이 등장하기 수십 세기 전, 영화는 상상하지 못했던 시대, 오직 서사시만이 구전으로 떠돌아 다닐 때, 그 때에도 연극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연극은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거리가 먼가(아니면 우리 모두가 배우가 된 것일까? 나를 속이고 가족을 속이고 타인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가면을 쓴 배우가 된 것일까? 그래서 연극,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연극을 볼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은 아닐까?). 

앙토넹 아르토(1896 - 1948).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 연출가, 연극이론가였다. 하지만 그는 연극 연출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그가 죽은 후에야 연극 이론으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그의 연극이론을 한 단어로 옮기자면, '잔혹극'(Theatre of Cruelty)라고 할 수 있다. 아래 연극 동영상을 잠시 보자. 


(* '미성년자 관람 불가'입니다. 다소 자극적이고 불쾌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르토가 쓴(혹은 연출했던) 작품인지 찾아보았으나,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잔혹극(Theatre of Cruelty)가 이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너무 자극적이긴 하네요.)



위 연극에서 아래 두 개의 지침이 반영되었는가? 글쎄다. 연극 연출에서 이해되는 바, '물질화'라든가 '말과 구별되는, 별도의 언어'가 무대 위에서 보여졌는가를 따져 묻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하지만 확연히 다른 이 연극. 아마 한국에선 실제로 보기 어렵지 않겠는가. 


1. 조형적이면서 시각적으로 말(parole)을 물질화하기.
2. 말과는 별도로 무대 위에서 발음되고 의미되는 모든 언어, 또는 공간에서 표현되는 모든 것 혹은 공간에 의해 해체되거나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언어.
- 104쪽 
 

아르토가 이야기하는 바 잔혹극의 지침인데, 다소 어렵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이에 이 책의 역자인 박형섭 교수의 설명을 인용하는 편이 좋겠다.  


아르토가 ‘잔혹연극’이라고 명명하는 ‘연극’은 서구의 문학적 연극을 지양하고 동양의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연극으로의 회귀를 강조한다. 즉 희곡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연극이 아니라 무대 연출에 중점을 둔 물질언어의 발명에 몰두하는 연극이다. 따라서 극작가보다는 무대 형상화에 종사하는 모든 연극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배우의 연기는 물론 연출가의 관점, 무대장식가의 미적 능력, 심지어는 극장의 구조까지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가령 배우는 매순간 창조의 상태에 놓여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살아있어야 하며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라야 한다. 고정된 언어의 반복적 구사가 아니라 울림과 생명이 용솟는 고함과 같은 활동적인 말표현이라야 한다. 그의 이중(double)의 개념은 여기서 비롯한다. 배우는 진정한 연극 속의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역자 서문 중에서 



말(언어)에 대한 반감(혹은 반대)은 포스트모더니즘, 즉 20세기 후반의 산물이 아니다. 따지고 든다면 19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20세기 전반기는 우리가 가진 언어에 대한 반감/반대/한계에 대해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여기에 앙토넹 아르토도 포함될 것이다. 


문명인은 하나의 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의 마음 속에서는 행위가 생각과 일치되기는 커녕 오히려 행위에서 생각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부조리한 상태로까지 확장된다. - 15쪽 


그는 문명, 서구문명에 대한 반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발리 연극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극작가가 쓴 희곡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 모든 것이 가지는 가능성을 극단까지 추구하며 극적인 순수함을 이끌어내는 연극, 이를 아르토는 잔혹극이라고 명명한다. 


'잔혹 연극'은 연극에 정열적이고 경련하는 듯한 삶의 개념을 주기 위해 창조되었다. 잔혹성은 강렬한 엄격함이나 무대적 요소들의 극단적인 응축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잔혹 연극은 잔혹성에 의존하는 연극인 것이다. 

잔혹성은 필요한 경우 피를 부를 것이지만 체계적으로 피를 요구하지 않는다. 결국 잔혹성의 의미는 무미건조한 정신적 순수함의 개념과 뒤섞여 있다. 이 정신적 순수함이란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가를 삶에 지불하는 일에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순수함이다. 
- 181쪽 





출처 - https://theatrerun.wordpress.com/tag/antonin-artaud/  



아르토는 발리 연극에서 잔혹극의 단초를 발견한다. 


(...)발리 연극의 첫 공연은 춤, 노래, 판토마임, 음악 등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환영과 공포의 시각 하에서 연극을 자율적이고 순수한 창조적 차원으로 되돌려 놓았다. - 81쪽 



아래 영상은 발리 전통 연극의 일부다. 그가 찾으려고 했던 바가 무엇이었을까? 






정열의 '시간'(temps)에 관한 비밀을 체험하는 것, 조화로운 율동을 조절하는 어떤 음악적 '템포'(tempo)를 체험하는 것, 그러한 것들이 바로 연극적 양상이다. 

- 194쪽 



이 책을 전문적인 연극 이론 서적으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마치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인류학 서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전에 이 책은 탁월한 시적 산문집이며, 서구 근대 문명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 대안을 찾는다는 점에서 문명 비평서로도 읽을 수 있다. <<슬픈 열대>>가 20세기 최고의 기행산문집들 중 한 권이듯이. 

아르토가 이 책에서 보여준 시적인 문장, 극적인 설득력, 그리고 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읽히고 영감을 주는 이유가 될 것이다.    



연기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언어처럼 암호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동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운동은 하나의 리듬에 맞추어질 것이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극단적으로 유형화됨으로써 그들의 제스처와 얼굴 표정, 의상 등은 조명과 같은 특징을 띨 것이다. 

- 145쪽 



2014년 봄부터 읽기 시작해 12월이 되어서야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책은 의외로 단단하고 압축적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놓쳐 읽을 수 없었고 어떤 문장 앞에서는 한참을 서성거려야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앙토넹 아르토의 시도가 20세기 후반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을까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 몇 권 되지 않을 듯 싶다. 예술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잔혹연극론 - 10점
앙토넹 아르토 지음, 박형섭 옮김/현대미학사



별첨) 


아르토에 대한 영화가 있었다. 영화에 대한 평점도 제법 높다. 아래 youtube 동영상으로 영화의 도입부를 잠시 볼 수 있다. 



http://www.amazon.com/compagnie-dAntonin-v%C3%A9ritable-histoire-dArtaud/dp/B007KDA3B6

영화 정보 : http://www.imdb.com/title/tt0106810/ 






2) 아르토는 발리 연극에서 연극의 순수함을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고대 연극의 특징들 - 제의에서 시작했다는 점, 음악이 연극에 포함되었고 가면을 쓰고 나온다는 점 - 에서, 아르토가 이야기하는 바 잔혹극은 일종의 고대적 방식으로의 회귀, 혹은 언어 이전 시기로의 복귀 같은 게 아닐까 싶어 한 번 자료를 찾아보았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적 방식으로  연극 연출이 실험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아래 연극은 모든 부분에서 고대 그리스적 방식을 적용한 것은 아닌 듯싶다.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에서 재현한 영상물을 찾아보았으나, 없어 아래 연극 영상을 올린다. 하지만 아래 설명에도 있듯이,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작품이다. 

(아마 한국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연극이겠지. ㅡ_ㅡ;)




Filmed by the famed British actor/director Sir Tyrone Guthrie, this elegant version of Sophocles' important play adds a brilliant stroke--the actors wear masks just as the Greeks did in the playwright's day. The story of Oedipus' gradual discovery of his primal crime--killing his father and marrying his mother--has influenced many of the great plays, films and books of all time. When this landmark film production of one of the great dramas ever appeared, it was hailed from all corners: "Spectacular and awesome...this film is a jewel of great price!" raved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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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콘텐츠 콘퍼런스 2014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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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콘퍼런스가 언제부터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 내 관심사는 매우 협소했다. 나름대로 다른 이들보다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이번에 다소 여유가 생겨 '스마트콘텐츠 콘퍼런스 2014'에 갈 수 있었다. 뭐, 이런 연유가 언제까지 이어질 진 나도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영어 공부하는 셈 치고 통역기를 빌리지 않았는데, 역시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에게 인상 깊었던 부분만 정리한다. 각 연사들이 한 말들을 내 마음대로 정리한 것이다. (참고로 점심 시간 이후의 두 개의 강연은 듣지 못했다. 다른 약속이 있었던 탓에. 이 두 강연은 비석세스에 기사로 올라와있다. 다행이다. 1. 미스핏 소니부 대표의 강연, 2. 가트너 코리아의 임진식 이사의 2015년 전략적 기술 트랜드 ) 


참고)

스마트 콘텐츠 콘퍼런스 2014http://www.smartcontent2014.org/2014/ 

(별도의 강연자료는 배포되지 않았다)





1. Lean UX cycle 

한 때 내가 웹에이전시에 호감을 느꼈던 이유는 Lean UX 방법론 등을 이용해서 Rapid Prototype을 만들고 재빠르게 해당 Product/Service를 Testing 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질 못했다. 나는 일당백이 아니고 팀이 필요했고 팀에 걸맞는 능력과 태도를 가진 멤버가 먼저 필요했다. 지금 웹에이전시에서 그런 인력을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팀원을, 팀을 확보한 곳에서는 빠르게 그런 프로젝트를 할 수 있고 그 프로젝트의 결과로 다양한 Product/Service를 만들고 테스트하며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 


내가 Lean한 방식을 처음 알게 된 것이 한국에 Lean Start-up이 소개되기도 전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도 프로젝트로 해보질 못했다. 아, 이번엔 할 수 있으려나. 그러나 역시 혼자선 무리다. 


2. IoT(internet of things)에서의 intelligence. 

시장에서 유의미한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그 속에서는 무조건 연산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인텔리전스(intelligence)라고 한다. 이 점에서 스마트폰은 탁월하다. 하지만 방대한 데이터를 다룬다면? 이럴 때는 Cloud Computing이 요청된다. Cloud 공간에서 intelligence를 담당하고 나머지 IoT 단말기에는 이를 보여주고 새로운 데이터를 수집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시스코에는 Fog Computing이라는 개념을, 퀄컴에서는 AllJoyn을 발표하여 시장에서 테스팅 중이다. 


3. 하드웨어 시장 

국내 중소기업이 타겟팅할 수 있는 H/W 시장은 연 10만대 이하 시장이다. 그리고 100만대 정도의 시장은 중국/대만 업체들한테 경쟁력이 없다. 그리고 100만대 이상 시장은 글로벌 대기업들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4. IoT 시장 

IoT 시장 규모는 아직 작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국내 IoT 트렌드는 해외보다 뒤쳐져 있다. 


5. 3D Printing

뭔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기에는 아직 한계가 많다. 특히 좋고 값비싼 제품은 좋은 재료로 만들어야 된다. 그러기에 좋은 재료의 가격 자체부터 비싸다. 하지만 'We Can update products like we update software'다. 


6. Connected Life 

스마트 디바이스들의 경험은 각기 다르다. Connected Life란 통신이 연결된다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연결된다는 걸 의미한다. 경험이 연장되고 경험들이 서로 연결될 때, Connected Life가 되는 것이다. 


7. Data의 중요성 

Data Transition, Data Sharing, Data Management가 중요해지고 있다. 중심은 Data다. 


8. 중국 시장에서의 QR 코드 기반의 Payment의 활성화. 

신용카드 보급율이 형편없다. 그리고 직접적인 지불/결제에 대한 불신이 심하다. 그래서 제 3자를 통한 QR 코드 결제가 활성화 된 것이다. 


9. Data Analysis 

아무리 좋은 Data 분석 툴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담당자가 필요로 하는 걸 제대로 보여주고 만들어내는가가 중요하다. 또한 분석 툴의 진화 과정 속에서 실제 담당자가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관리 리소스 투입량이 중요하다. 어쩔 수 없이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10. 소셜커머스 시장에 대한 전망

소셜커머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Data 중심, Data 분석이 중요해질 것이고 이를 통한 개인화, 자동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소셜커머스만의 경쟁우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11. 뉴 미디어 아트 

관객의 범위를 확장시키기 위해 실제 일상 공간으로까지 갈 수 있는 artwork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또한 관객 참여(engagement)를 위해 갤러리 공간에서 금기시되는 행위를 유발하는 작업들을 고민했다. 기술에 대한 반감을 극복하기 위해 오래된 물건/장치, 오프라인적 속성을 활용했다. 


12. 비즈니스와 Artwork 

artwork으로 attraction, 즉 고객을 끌어들인 다음 Brand, Product, Service 등을 보여주었다. 


13. 사람들은 보여주기 전까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 스티브 잡스 


14. 제품과 서비스가 융합되고 있다. 


15. hiring form world --> global starts-up

웹사이트는 영어로, 실제 글로벌 유저들과 Co-create, Think Global and act on it. 


16. Starts-up과 투자. 

융합형 기업에 관심이 높고 글로벌 대상 기업. 이미 국내 시장은 포화상태다. 협업도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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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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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일인지, 나이가 들수록, 일을 할수록, 사람을 만날수록 내 모자람, 내 무지, 내 불성실함을 깨닫게 되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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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Smoking by Juergen T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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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Smoking

Photographer Juergen Teller



유르겐 텔러의 사진. 묘한 이 느낌은 ... 뭐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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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The Persimmon Tree, 사카이 호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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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rsimmon Tree(감나무)

Sakai Hoitsu 

(Japanese, 1761-1828)

Period: Edo period (1615-1868)

Date: 1816

Culture: Japan

Medium: Two-panel folding screen; ink and color on paper

Dimensions: Image: 56 9/16 x 56 5/8 in. (143.7 x 143.8 cm) Overall: 65 1/4 x 64 in. (165.7 x 162.6 cm)

(c)Rogers Fund, 1957. Metropolitan Museum. 




사카이 호이츠(Sakai Hoitsu)의 작품이다. 타라시코미(Tarashikomi)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일본적이나, 서구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19세기 초, 일본에는 이미 서구의 문물이 많이 유입된 상태인 듯 싶다. 사카이 호이츠는 유복한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나 나중에 출가하여 스님이 된다. 타라시코미 기법이 어떤 것인가 검색해 보았더니, 한글로는 푸하, 네일아트가 뜬다. 이는 구글도 마찬가지여서, 타라시코미 기법을 알기 위해선 영어로 검색해야 된다. 한글로 온라인 상에서 구할 수 있는 정보는 종종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타라시코미는 일본 회화의 기법 중 하나로, 첫 채색이 마른 후에 두 번째 채색을 하는 기법이다. 두 번째 채색을 할 때 잔 물결이나 꽃잎 등을 흠뻑 젖게(dripping) 표현하는 게 특징이다. 위 작품에선 감잎이나 감에서 이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페이스북에 올라온 작품인데, 내 마음에 들었다. 한 쪽을 여백으로 처리하고, 감나무 하나, 그런데 이 감나무도 나무만 남게 될 암시가 가득한 이 작품은 마치 서양의 바니타스(Vanitas)화처럼, 쓸쓸하게 지쳐갈, 외롭게 죽어갈, 그러나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오게 될 봄을 기다리는 느낌이랄까. 벤야민의 페허 같았다. 


우리는 종종 끝없는 절망이나 견딜 수 없는 우울,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빠지지만, 결국 살게 되고 살게 되는 원천이 이런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떤 심연 속에 빠졌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 언젠간 봄이 올 것이고 그 때를 위해 고통스럽더라도 현재에 충실하고 오게 될 미래에 대해 생각하자. 어차피 인생은 힘들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니 말이다. 





참고. 

1) 타라시코미 : http://en.wikipedia.org/wiki/Tarashikomi 

2) 일본 에도 시대의 painting 작품들만 모아 한국에서 전시하면 어떨까? 꽤 흥미로울 것같다. 혹시 진행하게 된다면 내가 가서 자원봉사하겠다. 전시설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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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부여의 기술, 인터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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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부여의 기술
인터브랜드(지음), 엔트리



브랜드에 대한 짧지만, 탁월한 식견을 구할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갑자기 자신이 담당한 브랜드가 막강해지거나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게 되는 건 아니다. 


이 책은 '인터브랜드 코리아 창립 20주년'을 맞아, 창립 이래 발간된 인터브랜드 <브랜드 레터> 중 가장 의미 있는 글들을 모은 결과물이다. - 표지 뒷날개 중에서 


다만 브랜드 개론서들을 읽은 이들에게 이 책은 일종의 다이제스트판이라고 할 수 있겠고, 브랜드 경영이나 브랜드 전략에 다소 생소한 이들에겐 브랜드에 대한 소개서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겠다. 


그동안 많은 브랜드 관련 책을 읽었고 브랜드 경영과 관련된 스터디도 여러 차례 진행했지만, 역시 직접 브랜드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고, 고객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브랜드과 관련된 서비스/상품 전체를 다룬다는 건 만만치 않는 작업임에 분명하다. 요즘같은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더욱더. 


그만큼 브랜드에 기반한 비즈니스 수행은 어렵다. 브랜드만 있으면 될 것이라 여기지만, 만들어진 브랜드를 유지하는 건 더욱 고된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 상당부분은 고객과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며,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유지하고 서비스 본질을 추구하면서도 끊임없이 혁신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내용들이 다양한 사람들의 글과 목소리를 통해 꽤 설득력있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결국 브랜드란 서비스 / 상품 그 자체이면서 기업 자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모여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를 유지, 관리하며 브랜드를 이용한다. 경쟁 속에서 브랜드는 보이지 않는 경쟁 우위를 만들어 주며 지속 경영을 가능하게 해준다.



'앱솔루트는 보드카지만, '술 브랜드'라고 커뮤니케이션하지 않고 앱솔루트라는 브랜드로 커뮤니케이션 해왔기 때문에 다른 주류 브랜드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벤치마킹하지 않는다. 앱솔루트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이자 혁신적인 브랜드를 추구하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이나 혁신과 관계있는 모든 브랜드를 관심있게 살펴보고 있다. 

- 158쪽 



앱솔루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막강한 브랜드는 기존 시장 경쟁 구도까지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는 브랜드 경험의 일관성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브랜드 내면의 핵심이 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시각적 아이덴티티의 일관성, 베이식 로고와 어플리케이션 디자인의 일관성, 고객이 브랜드를 만나는 모든 접점의 아이템에 적용되는 디자인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그렇게 구축한 아이덴티티를 오랫동안 고집스럽게 지켜가는 것이야말로 브랜드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전략이다. 

- 147쪽 




기업의 전략 파트나 마케팅 파트 담당자가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책의 분량이나 내용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면서도 깊이있는 의견까지도 구할 수 있다. 





의미부여의 기술 - 8점
인터브랜드 지음/엔트리(메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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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점에서 아래 이미지를 구했다. 책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이미지로 일목요연하게 나온 듯하지만, 이렇게 거창하지 않다. ㅡ_ㅡ; 더구나 책을 읽어나가는 것과 아래 이미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책은 아래 이미지와 달리 매우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이 방향으로 향한다. 그래서 도리어 읽을 만한 책이다. (그런데 왜 이 이미지를? 아, 그건 아래 순서가 목차다.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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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칼더Calder 전, 리움, 2013.7.18 -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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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조각 알렉산더 칼더 Alexander Calder  

July 18 - October 20, 2013 

리움Leeum, Samsung Museum of Art 




전시를 보고 난 다음, 리뷰를 쓰기 위해 몇 편의 논문들과 자료들을 모아두었는데, 역시 직장인이란 늘 시간이 없다보니, 이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냥 메모만 해둔다. 


2013년 여름에 있었던 이 전시는 총 118점이 전시된 국내 최대 규모의 알렉산더 칼더 회고전이었다. 칼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무척 뜻깊은 자리였으며, 칼더를 모르는 이들에겐 칼더의 조각 인생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서커스 장면 Circus Scene

1929

Wire, wood and paint

127 x 118.7 x 46 cm

Calder Foundation, New York



알렉산더 칼더(1898-1976)는 움직이는 조각, 모빌을 창안하여 현대 조각의 혁신을 이끌었다.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일상 속에서 미술을 접하며 자란 칼더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으나 결국 잠재된 예술성을 따라 조각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1920년대 파리에 머물면서 몬드리안과 미로, 뒤샹, 아르프 등 당시 파리 미술계를 이끌던 작가들과 교류하며 추상 미술과 초현실주의같은 당대 최신 미술 경향을 접하고 크게 영향 받았다. 칼더의 대표적인 작업인 모빌과 스태빌은 칼더의 예술적 재능과 동시대 아방가르드 미술, 움직임을 구현하는 그의 공학적 지식이 조화를 이루어 탄생한 20세기 최고의 혁신적 조각이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서커스 장면>이라는 작품에서 우리는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철사로만 표현하는 칼더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곡예사들>이라는 아래 작품에서 칼더가 지닌 탁월함을 확인할 수 있다. 



곡예사들 Acrobats

c. 1927

Wire and wood

87.6 x 22.9 x 30.5 cm

Calder Foundation, New York

Gift of Katherine Merle-Smith Thomas in memory of Van Santvoord Merle-Smith, Jr., 2010




(... ...) 칼더 예술의 근간이 형성된 1920년대와 그의 혁신적인 작업인 모빌이 처음 등장하는 1930년대의 작업들이 선보인다. 우선, 그의 예술적 관심이 발하기 시작한 학창 시절의 그림들, 동물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묘사한 동물 스케치들, 1926년 파리 이주 직후에 시작된 철사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상의 특징적인 형태와 움직임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이를 놀라운 솜씨로 표현한 철사조각은 칼더의 천재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어 칼더가 파리의 주요 미술가들과 교류하며 추상미술을 익히고 이를 자신만의 양식으로 탄생시킨 1930년대의 역사적인 모빌과 스태빌도 감상할 수 있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Small Feathers

1931

Wire, hout, lead and paint

97.8 x 81.3 x 40.6 cm

Calder Foundation, New York





The Star, 1960

Polychrome sheet metal and steel wire, 35 3/4 x 53 3/4 x 17 5/8”

Bequest of George and Susan Proskauer 



(... ...) 작가의 전성기인 1940년대의 작업부터, 그가 말년에 집중적으로 제작한 대형 공공조각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원숙의 경지에 들어선 1940년대의 모빌은 단순히 균형을 이루는 수준을 넘어 역동적이고 다양한 움직임들을 보여준다. 조각의 형태 역시 작업실 주변 자연 환경에서 받은 영감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반영된 유깆거인 특징이 두드러지면서 다채로와진다. 칼더는 작가로서 큰 명성을 얻은 이후에도 여전히 새로운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2차 대전 동안 부족해진 금속 재료를 대신하여 나무나 청동으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작업을 선보여 예술가로서의 부단한 노력과 창의성을 보여주었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The three wings

Sculpture by Alexander Calder, 1967. 

Angered, Gothenburg, sweden.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




1960년대부터는 칼더는 공학기술을 이용해 공공 장소에 어우러지는 대형 조각을 만드는 일에 더 흥미를 느꼈다. 산업용 철판을 사용한 그의 대형 조각들은 마치 선박을 건조하듯 볼트로 조립하여 완성되었다. 1960년대는 많은 미국 조각들이 공공조각을 제작한 시기인데, 그 가운데서도 역동적이면서 부드러운 곡석인 특징적인 칼더의 대형 조각은 직사각형의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1960-70년대 국제 양식의 건물들과 대비를 이루며 공간에 활기를 불어 넣었고 도시의 랜드 마크가 되었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거대한 속도 La Grande vitesse 

1969

sheet metal, bolts, and paint 



칼더의 <거대한 속도>는 너무 유명한 조각이라,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칼더의 탁월함은 자연적 요소 - 공간, 바람, 공기 - 등과 어우러지면서 조각이 움직이며 이 움직임 속으로 관객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은 지극히 기하학적이면서도 유려하고 아름답다. 더구나 대중적이기까지 하다. 칼더의 작품은 쉽게 볼 수 있으니, 다음에 보게 되면다면 한 번 유심히 보면서 칼더의 작품이 시사하는 바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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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사무실 나가는 길,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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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으로 나가는 길, 중대 앞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효자손을 든 5살 무렵의 꼬마 여자아이와 길거리 카페 문 앞 긴 나무 조각들로 이어진 계단을 네모난 카드로 뭔가 찾는, 흰 머리가 절반 이상인 중년의 여자가 실성한 듯 두리번거렸다. 어제 불지 않던 바람이 오늘 아침 불었고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년의 여자와 꼬마 여자아이는 제 갈 길을 잃어버린 듯했다. 겨울 추위는 제 갈 길 잃어버린 자들에게 동정을 베풀지 않는다. 지구의 겨울은 거짓된 길이라도 제 갈 길을 가라고 가르친다. 심지어 인류의 역사도 길 잃은 자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데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발목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호랑이 무늬의 앙고라 자켓을 입은 꼬마 여자아이는 추위에 새하얗게 변한 얼굴 위로, 제 갈 길 가고 있다고 믿는 나에게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울컥했다.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고개를 돌린 방향으로 추위 속의 모녀는 움직였고 중년의 엄마의 흰 머리칼 사이로, 그녀가 손에 든 하얀 핸드폰 충전기가 눈에 띄었다. 충전기의 전선줄이 길게 늘어져, 걸음에 흔들거렸다. 흔들거리다 잠시 멈춰서고, ... ... 버스를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에게 길을 안내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지, ... 그녀들은 버스 정류장 옆에서 잠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 나라의 겨울은 참 오래 갈 것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겨울이 정치인들과 정부, 정부의 수반이 가지고 온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우리가 불러들인 것이다. 우리의 무관심, 냉대, 침묵이 불러들인 겨울이다.


그 겨울이 TV 속에 그 곳에서만 분다고 여기겠지만, 아마 조만간 우리 바로 옆으로 왔을 때 후회를 할 것이다. 늘 후회와 반성은 시간 늦게 도착하고, 우리가 건너려고 하던 저 다리가 부서지고 난 다음이다.


그런데 그 꼬마아이는 무슨 죄란 말인가. 그 꼬마아이가 자라나 스무살이 되고 서른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얼마나 많은 증오를 이 사회에 대해 가지게 될까, ... 도대체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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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추방, Rakuen Tsuiho: Expelled from Paradis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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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추방 Rakuen Tsuiho: Expelled from Paradise, 2014

감독 : 미즈시마 세이지 Seiji Mizushima 水島精二




애니메이션 보는 중년은 좀 이상한가? 아니면 오타쿠스럽나? ... 실은 매주 빠뜨리지 않고 <원피스>를 보고 있으니...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은 무척 탄탄하다. 특히 다양한 서사, 극 장르에서 아이디어를 수집하면서 서로 뒤섞여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그것이 그냥 개념적인 차원에서 머물던, <에반게리온> 시리즈에서처럼 끝없이 의문에 의문을 물고 나아가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2014년 하반기 일본 영화 시장을 평정한 <기생수>라는 작품도 만화가 그 원작이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 시장은 크고 탄탄하다. 







최근 본 <낙원추방>은 애니메이션 자체의 극화나 연출도 마음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스토리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육체를 버리고 비트화된 정신만을 가지고 메모리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나, 이들과 대비되어 환경 오염과 전쟁 등으로 황폐해진 지구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인간들의 모습은, 이 설정부터 기묘한 여운을 남긴다. 


또한 비트화된 정신의 인간들이 모여사는 '디바'에 해킹하여 들어온 '프론티어 세터'라는 존재가 주는 충격은 과연 '인간이란 뭐지'하는 생각까지. 


그렇다고 이 애니메이션이 이런 심각함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심각하지 않다. 빠른 전개와 현란한 전투씬은 무척 재미있으니까.  






자세한 스토리를 밝히는 건 이 작품을 보게 될 이들을 위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그림체도 좋고 화면 전환이나 연출도 좋다. 메카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꽤 좋은 선택이 될 듯 싶다. 이런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보면 더 재미있을 테지만, 워낙 애니메이션 시장이 작고 불법다운로드가 횡행하는 터라, 국내에는 개봉하지 못할 듯 싶고, DVD나 온라인에서 다운로드 받아 보아야만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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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을 찾아서, 이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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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을 찾아서 - 현대미술의 시작

이우환(지음), 김혜신(옮김), 학고재





번역자인 김혜신 교수에 따르면, 이 책에 실린 이우환의 글들은 주로 1960년대 말 쓰여졌다고 한다. 60년대 말에 출간된 이 책을 2000년에 일본에서 재 출간하였고, 2011년에 한국의 학고재에서 한글로 번역, 출판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당시 이 책은 일본 미술계의 ‘태풍이면서 바이블’이었다. 


우리는 이우환이 세계적인 예술가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탁월한 미술 비평가이자 이론가이며 일본 현대 미술에서도 그 위상이 대단한다는 사실은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일본어로 글을 쓰는 시인이자 산문가이며, 그의 일부 글은 일본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인정 받고 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이우환은 일본에서 먼저 유명해졌고 그 다음 파리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에서, 그런 다음 한국 미술계에 소개되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믿을까?)


1960년대 말 이우환은 현상학에서 바라보는 바, 서양 근대 철학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시각을 이 책을 통해, 그리고 모노하(もの派)라는 미술 운동을 통해 드러낸다. 이 책은 일본 모노하 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으며, 미술 이론가 이우환을 제대로 알린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그 탄탄함과 생생함이 가시질 않는데, 60년대 말, 70년대 초 메를로 퐁티, 마르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 그리고 니시다 기타로를 인용하며 일본 현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였을 때, 얼마나 많은 동시대 일본인들은 그를 질투했을까는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더구나 1960년대 말의 이우환만큼 탁월한 식견으로 뛰어난 글을 쓰는 미술 비평가, 혹은 이론가를 한국에서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원래 테이블이나 의자, 풍경 자체는 아무런 시각적인 원근법도 가지지 않는 세계이다. 실재는 인간의 가치 조정 없이 스스로의 거리를 가지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세계인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이 쪽이 중심이 되어 저 쪽을 보고 싶은 대로 규정하는 표상 관념에 의해 시야의 세계를 원근법의 화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110쪽) 



그는 서구의 모더니즘 미술을 부정한다. 그는 근대 철학은 실제 세계와는 무관한, 우리 관념의 표상을 상정하고 그 표상을 그대로 투영시킨다고 말한다. 즉 외부 세계는 우리의 관념으로 해석, 투영된 것이지, 실제 존재하는 바 외부 세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의 생각이 아니라 20세기 현상학자들, 특히 메를로 퐁티가 지적하는 바이며, 그 외 많은 사상가들이 지적해온 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메를로 퐁티에서 출발해 니시다 기타로에 이른다. 



우리의 신체라고 생각되는 것이 이미 모순적 자기 동일로서 행위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행위하는 것이 보고 있는 것이며, 보는 것이 행위하는 것이다. 신체의 움직임은 이미 표현 행위인 것이다. … … 행위하는 것과 보는 것이 결합하는 곳에 신체가 있다. 행위적-직관적으로 사물이 보이는 곳에 신체가 있는 것이다. 

- 니시다 기타로, <인간의 존재> 중에서(227쪽 재인용) 



… … 예술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가의 온전한 신체라고 해도 좋다. 

- 니시다 기타로, <무의 자각적 한정> 중에서(228쪽 재인용) 



관계항2007



우리가 1990년대 초반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서구 근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면, 이우환은 이미 1960년대 근대 철학, 근대성(Modernity)의 한계성을 이야기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예술적 방향이나 실천을 고민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긴 그 전에는 한국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그럴 여유도 없었겠지만, 그런데 지금은 뭐지?)


그가 집중하고 있는 현재의 작품 활동은 이런 그의 고민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인 동시에 공간이며, 공간인 동시에 시간인 지점이 열리는 순간, 시간은 동시성의 장소로서 만남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은 오는 시간도 가는 시간도 아니고, 바로 지금 여기의 안과 밖이 상호매개되는 열린 만남의 세계라는 점에서, 비대상적 차원인 것이다. (231쪽)



이런 측면에서 그는 상당히 관념적인 작가이며 일반 대중에게는 매우 어렵게 다가온다. 특히 그가 지향하는 미니멀한 표현 방식과 20세기 후반 서구 미술계를 주도했던 미니멀리즘과는 전적으로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언제나 나는 니시다가 말한 ‘절대모순적 자기 동일’을 비동일성의 지평으로 삼아, ‘무의 장소’를 관계성의 표현을 통한 무한한 울림-여백으로 전개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 한다. 

(… …)

예술의 과제는 인간이 더욱 직접적인 세계로 해방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를 어떻게 열어 제시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그것은 어떻게 현실을 표현의 상태성으로부터 그것의 현재화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242쪽) 



딱딱한 미술 이론서인 관계로 일반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술 전공자에게 추천하기에도 이 책은 솔직히 말해 어렵다. 실은 '어렵다'라고 하는 것이 다소 무안하게 여겨질 정도다. 1960년대 말 쓰여져, 그 당시 일본 미술계의 무수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책을 두고 '어렵다'라고 말하는 내가 부끄럽다. 아직까지 한국 문화, 예술계의 지적 토양은 1960년대 말 일본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것이다. 


굳이 이 책의 단점을 이야기하자면, 근대 철학을 이야기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거칠게 나누고 있었다. 서양 근대 철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드러나지 않고 한 쪽 방향으로 다 몰아넣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실은 그의 목적, 원근법적인 서양 근대 미술을 넘어서 새로운 예술적 실천을 도모하기 위함이지만. 하긴 이 책은 전문 철학 서적은 아니니... 


미술 이론 전공자이거나 비평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권한다. 그리고 이우환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이우환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만남을 찾아서 - 10점
이우환 지음, 김혜신 옮김/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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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1937', W.H.오든(Auden) - 2015년을 향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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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to-day the struggle."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 구절이라는 생각에 한글로 옮겼다. 역시 영시는 한글로 옮길 수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뜻을 통하게 옮길 수 있지만, 영어 고유의 맛을 옮길 순 없었다. 옮긴다면 아예 새로 창작한다는 기분으로 옮겨야 하고, 이럴 땐 번역이 아니다. 


아는 지 모르겠지만, 스페인은 20세기 대부분은 프랑코 독재 정권의 시대였고, 20세기 초반 무수한 유럽 지식인들이 '국제 여단Brigadas Internacionales)'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게 된다. 소설가이자 프랑스 초대 문화부 장관인 앙드레 말로도 이 전쟁에 참여하였고, 오든(W.H.Auden)은 구구절절하게 스페인 내전 참전을 독려하는 시를 적었는데, 바로 아래 <스페인 1937>라는 시다. 


2014년, 한국, 서울 속에서 살면서, 개인적으로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들었고 견디기 어려웠지만, 사회적으로는, 차마 내 개인적 삶이 엉망이 되었어요,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그런데 조용하기만 하다. 

이 기묘한 침묵은 무엇일까?


오든은 이야기한다. '오늘은 투쟁이라네(to-day the struggle)' 

내일은 2015년,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struggle일 것이다. 

분명한 목적이 있고 가치가 있는, 그리고 그것을 향한 전력투구!  



** 




Spain 1937 



                   - W.H.Auden



Yesterday all the past. The language of size

Spreading to China along the trade-routes; the diffusion

Of the counting-frame and the cromlech;

Yesterday the shadow-reckoning in the sunny climates. 


모든 과거가 있었던 어제. 크기를 나타내는 언어는

무역로를 따라 중국으로 퍼져나가고; 확산되는

주판 계산기와 고인돌. 

어제 태양이 비치는 세월 속에 간접계산법이 있었네.



Yesterday the assessment of insurance by cards

The divination of water; yesterday the invention

Of cart-wheels and clocks, the taming of 

Horses. Yesterday the bustling world of the navigators.


어제 서류를 통한 보험이 있었고 

해로를 예측하고; 어제 발명되었네

수레바퀴들과 시계, 길들인

말들. 어제 항해자들로 북적거렸던 세계가 있었지.



Yesterday the abolition of fairies and giants,

The fortress like a motionless eagle eyeing the valley.

The chapel built in the forest; 

Yesterday the carving of angels and alarming gargoyles.


어제 요정들과 거인들이 사라졌고

그 요새는 마치 계곡을 향한 독수리의 움직이지 않는 눈짓 같았지. 

숲 속에 지어진 성당; 

어제 천사들의 조각들과 불안하게 만들던 괴물석상들이 있었네



The trial of heretics among the columns of stones;

Yesterday the theological feuds in the taverns 

And the miraculous cure at the fountain;

Yesterday the Sabbath of witches; but to-day the struggle. 


이단자들의 재판이 돌기둥 가운데서 열리고;

어제 선술집에서 신학에 대한 논쟁이 있었네.

그리고 수원지(水源地)에서의 기적적인 치료

어제 마녀들의 연회가 있었지; 그러나 오늘은 투쟁이라네. 



Yesterday the installation of dynmos and turbines,

The construction of railways in the colonial desert;

Yesterday the classic lecture 

On the origin of Mankind. But to-day the struggle. 


어제 발전기와 터빈의 설치가 있었고,

식민지의 사막에 철도 공사가 있었네; 

어제 그 최고의 강의에선

인류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했지; 그러나 오늘은 투쟁이라네.



Yesterday the belief in the absolute value of Greek,

The fall of the curtain upon the death of a hero;

Yesterday the prayer to the sunset,

And the adoration of madmen. But to-day the struggle.


어제 그리스의 고귀한 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

영웅의 죽음 위로 내려오는 커튼. 

어제 일몰에 대한 기도가 있었네

그리고 미친 자들의 찬미. 그러나 오늘은 투쟁이라네. 



As the poet whispers, startled among the pines,

Or, where the loose waterfall sings, compact, or upright 

On the crag by the leaning tower; 

“Oh my vision. O send me the luck of the sailor.” 


시인이 속삭일 때, 소나무들 사이에서 깜짝 놀라,  

또는, 한가한 폭포가 노래하는 곳에서, 긴장해서, 또는 서서 

기울어지는 탑 옆 바위 위에

오 나의 비전이여, 오 나에게 선원의 운명을 다오 



And the investigator peers through his instruments

At the inhuman provinces, the virile bacillus

Or enormous Jupiter finished 

“But the lives of my friends. I inquire. I inquire.”


그리고 탐구자는 그의 기구를 들여다 보며

인간 밖의 영역에서, 강력한 세균, 

또는 이미 탐구가 끝난 거대한 목성 

“그러나 내 벗들의 삶들. 나는 묻는다, 나는 묻는다.”



And the poor in their fireless lodgings, dropping the sheets

Of the evening paper: “Our day is our loss, O show us 

History the operator, the 

Organiser, Time the refreshing river.” 


그리고 가난한 이들은 한 점 불도 없는 셋방에서, 종이 한 장을 떨어뜨리네

석간 신문 속에서: “우리의 날은 우리의 상실, 오, 우리에게 보여주시오 

역사라는 운행자여, 

조직자여, 강물을 끊임없이 정화시키는 시간이여.” 



And the nations combine each cry, invoking the life

That shapes the individual belly and orders

The private nocturnal terror; 

“Did you not found the city state of the sponge,


그리고 민중들은 그들 각자의 비명을 하나로 묶고, 그들의 생명을 불러일으키며 

각자의 배를 만들며 행하네.

한밤 중의 은밀한 테러를

“생명이여, 그대는 해면동물의 도시 국가를 찾았는가?  



Raise the vast military empires of the shark 

And the tiger, establish the robin’s plucky canton?

Intervene. O descend as a dove or 

A furious papa or a mild engineer, but descend.” 


거대한 군사 제국을 성장시켰는가? 상어와 

호랑이의. 세웠는가? 울새의 용기 있는 작은 지역을 

개입하라. 오 비둘기 한 마리처럼 내려가라, 또는

화가 난 교황, 또는 온화한 기술자처럼, 그러나 내려가라.”



And the life, if it answers at all, replies from the heart

And the eyes and the lungs, from the shops and the squares of the city:

"O no, I am not the Mover;

Not to-day; not to you. To you, I'm the


그리고 생명이여, 만약 대답한다면, 대답하거라, 심장으로부터

그리고 눈동자와 허파로부터, 가게들과 그 도시의 광장으로부터: 

“오, 아니구나. 나는 원동력이 아니다;

오늘도 아니고, 네겐 아니다. 너에게, 나는 그저 



Yes-man, the bar-companion, the easily-duped;

I am whatever you do. I am your vow to be

Good, your humorous story.

I am your business voice. I am your marriage.


예스맨이고, 술집 친구이고 쉽게 속는 사람이라네. 

나는 그대가 무엇을 하던지, 나는 당신의 맹세입니다,

좋게 되기 위한. 당신의 유머러스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당신의 사업 목소리이며 당신의 배우자입니다.  



What's your proposal? To build the Just City? I will.

I agree. Or is it the suicide pact, the romantic

Death? Very well, I accept, for

I am your choice, your decision. Yes, I am Spain." 

 

당신의 제안은 무엇인가요? 정의로운 도시를 세우는 것인가요? 나는 할 것입니다.

나는 동의합니다. 또는 동반자살을 하실 건가요? 그 낭만적인

죽음? 정말 그럼, 저는 동의 합니다. 왜냐면

나는 당신의 선택이며, 당신의 결정입니다. 그래요. 저는 스페인입니다.” 



Many have heard it on remote peninsulas,

On sleepy plains, in the aberrant fisherman's islands,

Or the corrupt heart of the city,

Have heard and migrated like gulls or the seeds of a flower.


많은 이들이 머나먼 반도에서 그것을 들었네. 

나른한 평원 위에서, 비정상적인 선원들의 섬나라에서, 

또는 도시의 타락한 심장부에서

갈매기떼나 꽃씨들과 같이 듣고 이주해오는구나. 



They clung like burr to the long expresses that lurch

Through the unjust lands, through the night, through the alpine tunnel;

They floated over the oceans;

They walked the passes. They came to present their lives.


그들은 가시 달린 열매들처럼 달라붙어 있구나, 기나긴 급행열차에 달라붙어 휘청거리며,

정의롭지 못한 땅을 지나며, 밤을 통과하며, 알프스 산맥의 터널을 지나며; 

그들은 대양들을 떠다녔다

그들은 산길을 걸어갔다.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보여주며 갔다. 



On that arid square, that fragment nipped off from hot

Africa, soldered so crudely to inventive Europe,

On that tableland scored by rivers,

Our fever’s menacing shapes are precise and alive.


그 불모의 사각형 위에, 뜨거운 아프리카에서 떼어낸 조각, 

납땜질된, 창의적인 유럽에 대강 납땜질되어 붙은

강줄기에 의해 금이 그인 대지 위에 

우리들의 열병의 위협적인 형체들은 명확하고 생생하다.



To-morrow, perhaps, the future; the research on fatigue

And the movements of packers; the gradual exploring of all the

Octaves of radiation;

To-morrow the enlarging of consciousness by diet and breathing.


내일은, 아마도, 미래가 있겠지; 피곤에 대한 연구가 있고 

짐 꾸린 사람들의 움직임들이 있고; 

빛의 모든 옥타브에 대한 점증적인 탐험이 있고 

내일은 식이요법과 호흡작용에 의한 의식의 확장이 있을 것이네. 



To-morrow the rediscovery of romantic love,

The photographing of ravens; all the fun under

Liberty's masterful shadow;

To-morrow the hour of the pageant-master and the musician,


내일은 낭만적 사랑의 재발견이 있고 

까마귀 떼의 사진촬영이 있고; 모든 즐거운 것들이 

자유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 있을 것이라네 

내일은 화려한 무대의 연출자와 음악가의 시간이 있을 것이네. 



To-morrow for the young the poets exploding like bombs,

The walks by the lake, the winter of perfect communion;

To-morrow the bicycle races

Through the suburbs on summer evenings: But to-day the struggle.


내일은 젊은 시인들이 폭탄처럼 터져 시를 쓸 것이라네.

호수를 따라 걸으며, 완전한 결합을 이룬 겨울, 

내일은 자전거 경주가 

여름 저녁 교외를 따라 있을 것이네; 그러나 오늘은 투쟁이라네. 



To-day the inevitable increase in the chances of death;

The conscious acceptance of guilt in the necessary murder;

To-day the expending of powers

On the flat ephemeral pamphlet and the boring meeting.


오늘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확률이 증가하고 있다네.

살인의 필요함, 그 범죄를 알면서 받아들여야 하지.

오늘, 우리의 힘은 빠지고 있지.

맥없고 덧없는 팜플렛과 지루한 회합 위에서



To-day the makeshift consolations: the shared cigarette;

The cards in the candle-lit barn, and the scraping concert,

The masculine jokes; today the

Fumbled and unsatisfactory embrace before hurting.


오늘 일시적인 위안들이 있지; 나누어 피는 담배;

촛불로 밝힌 곳간에서의 카드놀이, 그리고 삐걱대는 음악회,

사내들의 걸쭉한 농담; 오늘은 

전투 앞의 서투르고 불만족스러운 포옹이 있네



The stars are dead; the animals will not look:

We are left alone with our day, and the time is short and

History to the defeated

May say Alas but cannot help nor pardon.


별들은 죽었네; 동물들은 쳐다보지 않겠지.

우리들은 우리들의 시대에 홀로 남겨졌지, 시간은 짧고

역사는 패배한 자들에게 

유감이라곤 하진 않겠지만, 도움도 용서도 없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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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H. Auden(1907~1973)의 시 <Spain 1937>의 번역으로 원문은 아래와 같다. 원시는 1937년 <Spain>으로 발표하였으나, 1940년 Auden이 출판한 <<Another Time>>에서 <Spain 1937>로 제목을 바꾸고 일부 내용을 삭제하고 수정하여 실었다. 위키피디아의 <Spain(Auden)> 항목에 따르면, 후에 그는 작품 선집(his collected editions)에서는 이 작품을, 결코 믿지 않았던(never believed) 정치적 견해가, 그의 생각에는 수사적으로 효과적으로 표현된 “정직하지 못한”(dishonest) 시로 여겨 거부했다고 한다. 


이 시의 원문은 한국방송통신대학(Korea National Open University) 영어영문학과 4학년 전공수업교재인 <<영미시 British and American poetry>>(김문수, 이두진, 이철 공저)에서 옮겼으며, 번역은 교재의 주석, 김문수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참고하여 번역하였다. 



W.H. Auden

by Cecil Beaton

vintage bromide print on white card mount, 1930

9 1/2 in. x 7 5/8 in. (240 mm x 195 mm)

Given by Cecil Beaton, 1968

http://www.npg.org.uk/collections/search/portrait/mw18383/WH-Au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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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독서 기록 - 책읽기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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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독서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줌파 라히리와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읽었다는 건 정말 뜻깊은 경험이었다. 또한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다. 2014년 12월에 읽었던  <제 2의 기계 시대>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아직 리뷰를 쓰지 않았지만. 


비즈니스 분야의 책들은 많이 읽지 못했으나, 읽는 책마다 나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 주었다. <린 스타트업>,  <뇌를 훔치는 사람들>,  <전략실행 - CEO의 새로운 도전> ,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등은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전략실행-CEO의 새로운 도전>이 출판되지 않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미국에선 개정판이 나와 계속 읽히고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한국은 좋은 책이 계속 읽히는 풍토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의 원인은 출판계보다는 독자의 사정 탓인 듯 싶다. 그만큼 책을 읽어 구조화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 아니 습득하는 능력 자체마저 떨어지고 있다고 하면 너무 비약일까. 특히 번역서의 경우, 인문학에서는 번역에 대한 노고에 대한 인정이 없고, 비즈니스 서적이나 실용 서적의 경우에는 굳이 번역서를 읽지 않아도 되는, 즉 영어로 읽을 수 있는 독자의 수가 늘고 있으니, 아예 번역 출판 시장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특히 e-book 시장이 활성화될 수록 아마존과 같은 웹사이트에서 구매 즉시 바로 읽을 수 있으니, 굳이 번역서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출판 시장의 기형화는 장기적 안목과 비전을 가진 출판 전문가의 부재, 정부나 유관 기관의 형편없는 정책, 독서 교육에 대한 총체적 난국(입시 논술이 아니라!) 등, 그냥 이제 출판은 꽝이요 라고 스스로 선언하는 듯하다. 한국에 이렇지 않은 시장이 어디 있을까. 암울하기만 하다. 한국은 예로부터 근시안적이었던 건 아닐까 싶다. 에효. 


2014년 한 해, 약 50권의 책을 읽었고 소설, 시집, 만화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다양하게 읽었다고 볼 수 있다. 잡지나 도록, 기타 논문들은 포함시키지 않았으니, 실제 읽은 권 수는 더 될 것이다. 신간 서적은 몇 권 되지 않고 구간들이 많고 몇 권은 이미 절판이다. 이런 절판된 책들을 e-book으로 만들어 배포하면 어떨까 싶다. 인디자인이나 쿽으로 전자 출판된 파일이 있다면, 이를 pdf 등으로 변환하여 온라인 서점에 배포하고, 이를 on-demand printing이나 e-book 형태로 판매하는 것도 방법이 될 텐데. 여기에 대해 출판사는 별 생각이 없는 듯 싶다. 아니면 절판된 책에 대한 e-book, 혹은 on-demand printing을 대행해주는 전문 에이전시도 방법이 되겠다. (핫. 이거 비즈니스 모델 아님? 혹시 하시게 된다면 저도 같이..^^) 


인문학 서적은 꾸준히 읽어오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읽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인문학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인문학 다이제스트판 책들을 읽으면서 '아, 인문학 책을 읽었구나'고 위안을 삼는 독자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지만, 제대로 된 인문학 선생을 만난 적 없는 독자들에게, 심지어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이들 조차 진정한 인문학 선생을 만나기 어려운 마당에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보아온 형편없는 인문학 교수들, 다시 말해 한 분야에 대해 전문적이나 나머지 분야에 대해선 문외한이고 심지어 세상사와는 담을 쌓고 사는 이들이 너무 많아, 그들에게 현 세상에 대해, 인생 살이에 대해 고민을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고민을 이야기해봤자 공허한 이론만을 주절거릴테니, 이를 경험한 이들은 아, 인문학은 아무 쓸모 없구나 하는 잘못된 편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인문학이 탐구하는 분야는 '사랑'이다. 그/그녀에 대한 사랑부터, 부모/형제/자매에 대한 사랑, 마을과 도시에 대한 사랑,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 가치와 진리에 대한 사랑, 그래서 철학은 사랑을 그 어원에서부터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학문은 철학에서 시작한다. 우주에 대한 사랑은 천문학이 되고 건물에 대한 사랑은 건축학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아는 이는 알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 공부는 어렵고 힘든 것이다. 그/그녀와의 사랑이 쉬웠던 적이 있는가?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쉽게 읽히는 인문학 책이 있다면 바로 쓰레기 통에 버려라. 그건 거짓말이거나 위선이고 허위로 이루어져 있을 테니.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고통스러울 때, 그것이 인문학 책이다. 그렇게 다시 읽고 노트하고 되새기는 책, 그게 인문학 책이다. 


인문학을 4주만에 배운다고?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다고? 세계적인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를 딴 사람들이 왜 사업을 하면 망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라. 인생살이란 쉽지 않고 사랑은 얻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쉽고 않고 어려운 것이 사랑이고, 인문학이다. 


올해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지 못했고 읽기 시작하기만 했다. 알튀세르를 다시 읽기 시작했고 지오 폰티와 앙토넹 아르토는 나에게 기막힌 즐거움을 선사했다. 조중걸 선생님의 서양예술사 5권 중 3권이 출판되었다. <근대 예술>1권과 2권, <현대 예술>은 서양 예술사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현대 예술>은 이미 읽었으나, 다시 읽을 예정이며, <근대 예술>은 12월부터 읽기 시작했다. 


또한 이우환 화백의 책들을 읽었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여백의 예술>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나로선, 역시 이우환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만남을 찾아서>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그는 어렸을 때 한학을 배웠고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다)와 예술의 미래에 대한 진취적인 고민, 탁월한 방향 제시는 그가 왜 일본에서, 유럽에서, 미국에서 인정받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예술 분야의 책은 거의 읽히지 않는다. 이우환의 <만남을 찾아서>는 독자 리뷰가 거의 없은 상태에서 아예 절판이고, 앙토넹 아르토의 <잔혹연극론>은 품절이다. 케네스 클라크의 <예술과 문명>은 번역이 엉망이긴 했으나, 미술사가의 능력이 어떠한가를 보여준 탁월한 입문서였다. 하지만 이 책 또한 절판이다. 형편없는 입문서들만 뒹굴거리는 곳이 바로 예술 분야 책들이다. 왜냐면 입문서도 겨우 읽을 수 있는 독자들 밖에 없으니까.


이렇게 예술 분야는 출판 시장 뿐만 아니라 예술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보기 드물게 아주 소수의 전문가들로만 돌아가는 이상하고 폐쇄적인 사회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 폐쇄성을 없애려고 하는 순간, 망하거나 쫓겨난다. 


말이 길었다. 2014년 한 해 읽은 책 목록을 제시하며, 추천하는 책들은 별도로 표시하겠다. 그리고 실은 2014년 초에 몇 권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들이 있었는데, 놀라운 쓰레기였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저자의 경제 사정을 나아지게 했다는 점에서 뜻깊지만(나 또한 부러움을 가졌고), 이 책을 읽고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을 느꼈을 독자들을 생각하니, 화가 났다. 아예 목록에서 제외했다. 괜히 넣어 불편함을 만들 필요없을 테니(제외하니, 50권 이하로 읽었군).


책은 몇 권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책을 읽었느냐가 핵심이다. 부언하자면,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는냐'가 중요하다. 어떤 책들은 평생을 두고 읽는다. 성경 말고. 나는 플라톤이나 베르그송을 그렇게 읽고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읽을 때마다 새롭고(하지만 그의 슬픔은 어쩌란 말인가), 베르그송은 언제나 문학적, 철학적 탁월함에 반하고 만다. 그렇다고 나에게 플라톤이나 베르그송에 대해서 묻진 말아달라. 나는 그들의 발가락 끝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 뿐이니. 


2015년, 내 독서는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까. 궁금하다. 몇 해 전부터 '정치란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몇 권의 '정치철학' 책들을 사 두었는데,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아마 이 책들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몇 명 저자들의 책을 꾸준히 찾아서 읽을 것이다. 또한 요즘 영시의 매력에 빠진 터라, 영시도 읽을 생각이다. 나에게 다소 버거울 테니, 주석을 구할 수 있는 시집들 위주가 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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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분야


<원 맨즈 독>, 조지수(지음), 지혜정원

: 인문학 전공자들을 위한 수필집이라고 할까. 아니면 탁월한 지적 위트와 통찰을 즐겁게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은 탁월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지음), 서정은(옮김), 뿔 

<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지음), 박상미(옮김), 마음산책

: 앨리스 먼로와 줌파 라히리는 정말 대단한 소설가들이다. 그냥 읽으면 된다. 읽고 난 다음 후회는 절대 없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글/그림, 길찾기 

: 문학의 영역 속에 이제 만화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몇 명의 만화가들이 최근에 보여준 극화나 스토리 역량은 한국의 여느 소설가들 이상이었다. 


<미국의 송어낚시>, 리처드 브라우티건(지음), 김성곤(옮김), 비채

: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예나 지금이나 읽히지 않는다. 그만큼 옮기기도 어렵고 한국 독자의 수도 작고 낮다. 


<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지음), 김진영(옮김), 이순

: 롤랑 바르트의 짧은 글 모음은 여러 책들이 있다. <애도 일기> 뿐만 아니라 <작은 사건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등등. <애도일기>를 읽기 전에 이들 책부터 먼저 읽기를 바란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지음), 한겨레 출판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랭보(지음), 김현(옮김), 민음사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지음), 문학과 지성사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김경주(지음), 문학과 지성사

<멈춰서서>, 이우환(지음), 성혜경(엮음), 현대문학

<사요나라, 갱들이여>, 다카하시 겐이치로(지음), 이상준(옮김), 향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보르헤스(지음), 우석균(옮김), 민음사

<셰익스피어의 기억-보르헤스 전집5>, 보르헤스(지음), 황병하(옮김), 민음사 



예술 분야


<만남을 찾아서 - 현대미술의 시작>, 이우환(지음), 김혜신(옮김), 학고재 

: 1960년대 말 일본 미술 비평의 수준을 경험해보라. 아마 뜨끔할 것이다. 


<명화의 비밀>, 데이비드 호크니(지음), 남경태(옮김), 한길아트

: 데이비드 호크니! 정말 유쾌한 사람이다. 그는 카메라 옵스큐라와 카메라 루시다를 이야기하면서 위대한 미술의 거장들이 탁월한 예술가 이전에 전문적인 기술자였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기술을 기반으로 놀라운 예술 세계를 펼쳐보인 거장들에 대한 경외감이 밑에 깔려 있다. 


<건축예찬>, 지오 폰티(지음), 김원(옮김), 열화당

: 왜 나는 이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을까? 왜 나는 이 책을 그 누구에게서도 추천받지 못했을까? 이 책은 건축 전공 서적이 아니라 우아하고 감동적인 수필이자 건축에 대한, 현대 예술에 대한 사랑 고백이다. 


<다시, 그림이다>, 마틴 게이퍼드(지음), 주은정(옮김), 디자인하우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를 모은 이 책은 왜 데이비드 호크니가 현대의 위대한 예술가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다.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조중걸(지음), 한권의 책 

: 잡지에 실렸던 글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다. 이 책보다는 서양미술사 5권 시리즈가 더 나을 텐데, ... ... 


<예술과 문명>, 케네스 클라크(지음), 최석태(옮김), 문예출판사 

: 절판이다.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 미셸 뷔토르(지음), 김치수(옮김), 문학과 지성사 

: 한국에선 거의 읽히지 않는 누보 로망. 그리고 미셸 뷔토르. 그러나 이 책은 현대 소설이 어때야 하는지 말해준다. 이런 측면에서 제대로 된 현대 소설을 우리 문학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까?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로잘린드 크라우스(지음), 최봉림(옮김), 궁리 

: 좋은 책이나, 미술 이론 전공자를 위한 전문 서적이다. 이런 책들을 위한 출판 시장이 없다는 건 정말 절망적이다. 출판사가 자선 단체도 아니고. ㅡ_ㅡ; 이 책은 대림미술관의 지원을 받아 나온 책인데, 이런 식으로 전문 서적에 대한 여러 공공/민간 단체의 지원이 늘어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다.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한글로 된 전문 지식, 정보들은 늘어나야 된다. 


<잔혹연극론>, 앙토넹 아르토(지음), 박형섭(옮김), 현대미학사 

: 이것도 전문 서적이구나. ㅡ_ㅡ;;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지음), 박수지(옮김), 학산문화사

<세계명화 비밀>, 모니카 봄 두첸(지음), 김현우(옮김), 생각의 나무 


인문 분야 


<제 2의 기계 시대>, 에릭 브린욜프슨/앤드루 맥아피(지음), 청림출판 

: 정말 좋은 책이다. 증기 혁명 이후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고 있고 이 혁명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직업이,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시해주고 있다. 


<나를 지켜낸다는 것>, 팡차오후이(지음), 박찬철(옮김), 위즈덤하우스

: 다시 읽을 책이다. 현대적 관점에서의 중국 사상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유익한 책이다.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김동조(지음), 북돋음 

: 이런 책은 유익하다. 


<짝찾기 경제학>, 폴 오이어(지음), 홍지수(옮김), 청림출판 

: 미시경제학을 쉽게 풀어쓴 책. 미국에선 꽤 주목받았는데, 한국에선 거의 팔리지 않았다. ㅡㅡ;; 시장의 차이인가. 


<어떻게 자유주의에서 벗어날 것인가>, 알랭 투렌(지음), 고원(옮김), 당대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E.흄(지음), 박상규(옮김), 현대미학사 

<책, 그 살아 있는 역사>, 마틴 라이언스(지음), 서지원(옮김), 21세기북스 

<거짓말의 힘>, 우테 에어하르트/빌헬름 요넨(지음), 청림출판 

<리더가 사라진 세계>, 이언 브레머(지음), 박세연(옮김), 다산북스

 

경제 경영 분야


<린 스타트업>, 애시 모리아(지음), 한빛미디어 

: Lean Start-up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유익한 책. 


<회사는 어떻게 강해지는가>, 이나모리 가즈오(지음), 김정환(옮김), 서돌

: 이나모리 가즈오가 쓴 책은 대부분 읽을 만하다. 또한 사업을 하고 있는 이들에겐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해준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다. 특히 동양인 사업가의 마음가짐, 태도에 대해서 알 수 있어 좋고 유익하다. 이는 서양인 사업가들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전략실행 - CEO의 새로운 도전>, 로렌스 G.히레비니액(지음), 이진원(옮김), 럭스미디어 

: 최근 알게 된 사실, 순수 비즈니스 전략 책은 안 팔린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경영학자의 책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첫 번째 읽기 어렵고 두 번째 전략적인 의사 결정이나 회사/조직을 전반적인 관점에서의 고민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겐 공허한 메아리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정말 좋다! 


<뇌를 훔치는 사람들>, 데이비드 루이스(지음), 홍지수(옮김), 청림출판 

: 뉴로 마케팅? 우습게 여기지 말아라. 정말 위험한 기술이고 어떤 면에서 보면 정말 탁월한 기술이다. 이 책을 읽으면 절반의 흥미진진함, 절반의 공포를 알게 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 새로운 마케팅의 탄생 COD>, 도준웅(지음), 21세기 북스 
: 읽을 만 하다. 특히 한국 기업의 마케팅 실무자,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추천한다. 솔직히 저자의 견해대로 한국 시장은 정말 로컬스럽다.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브래드 스톤(지음), 야나 마키에이라(옮김), 21세기북스 
: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천재 사장과 천재 부사장이 경영하는 회사가 아마존임을 알게 되었다. 이 회사 앞으로 100년 간다. 

<의미부여의 기술>, 인터브랜드(지음), 엔트리  

<파괴자들>, 손재권(지음), 한스미디어 

<미래 기업의 조건>,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지음), 이진원(옮김) 비즈니스북스 

<그룹드 세상을 연결하는 관계의 비밀>, 폴 아담스(지음), 이지선(옮김), 에이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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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영웅,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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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영웅', 1998.



서경식 교수의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읽고 있다. 여기에 실린 정연두와의 인터뷰는, 그동안 무심코 보아온 그의 작품들에 대해 다시 생각케 했다. 정연두의 스쳐가는 이미지들 사이로, 그의 작가적 개입과 실천을 보지 못한 셈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분당의 풍경이 완전히 변해 있었어요. 같은 규격의 아파트가 장대하게 늘어서서 마치 분당이라는 지명이 사라지고 아파트 동호수만 보이는 느낌이었죠. 어느 날 거기서 교통사고를 목격했어요. 작은 오토바이가 충돌해서 운전하던 아이가 다쳤습니다. 소년은 아픔을 참으며 달려온 사람들에게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고 대답했어요. 짜장면을 배달하러 가는 참이었나 봐요. 그 후에 그 아이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고 회복한 다음에 이 작품을 찍었습니다." - 정연두 

(서경식, <<나의 조선미술 순례>>, 반비, 115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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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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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지음), 최재혁(옮김), 반비 




현대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그녀와 이야기하는 게 어려울까? 그렇지 않을 게다. 그렇다면 그/그녀가 만들고 보여주는 미술 작품은? 정녕 모른다면 친구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동시대 미술(우리에겐 현대미술)을 보고 감상하지 못한다면, 그건 미술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우리 시대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즉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주위를 돌아볼 겨를 조차 없이 무언가에 쫓겨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옳은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자주 전시장을 찾고 자기 자신에 대해 보다 솔직해지고(심지어 자신의 아픔, 상처와 대면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진다면, 현대 미술은 감상하기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마치 이 책의 저자, 서경식 교수처럼. 그는 태생적 아픔으로부터 두 형의 구속 등 그의 인생 자체가 바로 한반도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만, 그는 이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미술 순례 시리즈의 시작점이었을 지도. 

서경식은 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공감을 가지고 있으나, 전문적인 식견으로 파고 들어 분석하는 이가 아니다. 그리고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그는 현대 미술 작가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그들의 작업과 작품에 대해 소개하면서도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고 도리어 감동적이고 내가 우리 미술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구나 하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마음을 울리는 작품 앞에서, 그 작품과 그 작품을 만든 작가와의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감동은 커녕, 위선과 위악으로 가득찬 작품 도판을 책에 실고 갖가지 이론을 들이미는 책들을 보면서, 나는 '예술 작품의 감동 앞에선 그 어떤 이론도 무용지물인데'라고 중얼거리곤 한다.(아, 이 중얼거림이란!) 

이 책에서도 다소 어려운 단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가령 윤석남에 대한 챕터에서 길게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든지 ..., 하지만 페미니즘은 그저 시류처럼 흘러 지나가고 여성 작가로서의 윤석남에 대하여, 윤석남이 만드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그것을 보다 풍성하게 해주는 곁다리 이야기였을 뿐이다. 

현재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신경호, 정연두, 윤석남, 미희, 홍성담, 송현숙, 그리고 월북작가 이쾌대, 조선 시대의 신윤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쉽게 읽히나 가볍지 않고, 진지하고 심각하지만 울거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 일들이 있었나 할 정도로 담담하게 서술되고 있다. 아마 그건 이 책의 저자도 이미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피해자였으며,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작가들이 바로 그런 현대를 살아온 이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여러 예술 서적으로 탁월한 에세이스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서경식의 신작 <<나의 조선미술 순례>>도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도리어 작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서 더 좋았다. 2015년, 이 책으로 시작해도 나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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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을 짧게 메모해보았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해 그는 '한국'이라는 단어 대신 '조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한국'은 그 범위가 작아 자기 같은 재일한국인이나 미희와 같은 해외입양아 등 우리 민족 전체를 보여주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단어라 생각했으며, 동시에 '조선'이라는 단어 속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경호, 넋이라도 있고 없고: 초혼 1980, 1980 


집에서 그렸을 거예요. 광주항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그렸던 그림이죠. 광주 상황이 끝나고 나니까 거지와 넝마주이, 구두닦이가 하나도 안 보이는 거예요. 그 기간에 다 사라져버렸죠. 그들은 대부분 고아였거든요. 찾거나 신고하는 사람도 없었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들이 언젠가는 광주로 돌아올 텐데 하는 마음으로 그렸던 그림입니다. - 신경호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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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는 피사체가 되는 일반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작품을 만든다. (84쪽) 

정연두, 상록타워 Evergreen Tower55×80×32,  사진, 2001



정연두, 상록타워 Evergreen Tower55×80×32, 사진, 2001



예술가는 사회적인 리더도,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려운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관찰자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기보다 예술 자체가 하나의 좋은 매개체가 되는 것 같아요. 이해하기 힘들어도 "아아, 이건 예술이니까, 아트 프로젝트니까 ... ..."라면서 관대히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 정연두(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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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미인도, 114.2cm * 45.7cm, 비단에 채색, 간송미술관 



바로 이런 인상이다. 나 역시 '미인도'에서 같은 인상을 받았다. 남성이 지닌 시선의 폭력에 갇혀 긴장하는 모습도 없고, 거꾸로 거기에 아양 떨며 자신을 상품화하려는 생각도 없이, 정녕 '자연체'인 것이다. 한 마디로 '미인도'의 여성은 '기호'가 아니다. 자신을 그리고 있는 화가가 동성인 여성이거나, 혹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기에 가능한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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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저는 단지 외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디아스포라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디아스포라가 된 배경에는 어떤 식으로든 강제성이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경제건, 전쟁이건, 혹은 입양 제도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억지로 갈라지고 헤어진 경험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 미희(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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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 욕조: 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 1999 



섬에서 자란 인간이라서 제게 물은 생산의 이미지입니다. (중략) 힘들 때마다 고향의 푸른 바다를 떠올리면 힘이 났습니다. 

그런데 남산에 있는 안기부 지하실에서 그 생산과 생명의 물, 생업으로서의 물, 나의 희망으로서의 물이 하필이면 나를 고문하는 도구가 될 줄 어떻게 예상했겠습니까? 안기부 놈들이 이른바 나를 물과 맞서게 했고, 결국 그 물에게 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날조한 대로 저는 북한에도 두 번이나 왕래한 간첩이 되어버린 거죠. 

감옥에서 나왔지만 그 후로는 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되살아나서 완전히 폐인처럼 살았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도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물에 대한 공포를 계속 껴안고 살아갈 것인가? 세계를 이루는 원초적 개념 중 하나인 물에 공포를 가진 채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물과 정면대결하자고 생각했어요. - 홍성담 (333쪽)







나의 조선미술 순례 - 10점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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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기계 시대, 에릭 브린욜프슨, 앤드루 맥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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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기계 시대 The Second Machine Age
에릭 브린욜프슨, 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옮김), 청림출판 




Estimated world population figures, 10,000 BC - 2000 AD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World_population 



1775년 증기기관의 등장은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강력한 기계력(mechanical power)의 등장은 모든 면에서 인류 사회를 변화시켰고 이 영향으로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즉 그 전까지 죽던 이들이 죽지 않아도 되는 세계가 열린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런 산업 혁명과 버금가는 혁명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며, 이를 '제 2의 기계 시대'라고 말한다. 인터넷, PC, IT로 이야기되는 '디지털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생산성은 전부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거의 전부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국가의 능력은 거의 전적으로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을 높이는 능력에 달려있다." 
-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96쪽에서 재인용)


폴 크루그먼의 견해대로, 증기기관은 기존에 있었던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이러한 기술을 '범용 기술(GPT, General Purpose Technology)'라고 한다. 하지만 범용기술이 실제 현장에서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범용기술이 늘 보완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보완 기술은 출현하는 데 몇 년, 심지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으며, 그 때문에 한 기술의 출현과 그것이 주는 생산성 혜택 사이에 시간 지체 현상이 나타난다. 전기화와 컴퓨터화 양 쪽에서 이러한 추세를 분명히 살펴볼 수 있다. (133쪽) 


공장이라면 공장의 구조나 설비의 배치가 새로운 범용 기술을 도입하지 못하는 구조로 되어있거나, 공장 노동자들이 이러한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 


투자한 기업에 컴퓨터의 생산성 혜택이 온전히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까지는 평균 5년에서 7년이 걸린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것은 컴퓨터화 노력을 성공으로 이끌 다른 보완 투자가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반영한다. (137쪽) 

이렇게 새로운 기술이 생산 현장에 적용되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성이 높아진다. 즉 예전에 10명이 매달려서 하던 일을 1명이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렇다면 9명은 어디로 가지? 


"GDP에는 우리 시의 아름다움이나 대중 논쟁에서 드러나는 지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우리의 재치나 용기도, 지혜나 학습도, 연민이나 헌신도 측정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들은 모두 제외한 나머지 것들을 측정할 뿐이다." - 로버트 케네디(Robert Kennedy) (141쪽에서 재인용) 



뉴스를 보면 1인당 GDP가 어떻고 수출입 현황이나 수익이 얼마나 증가했는가를 말한다. 그런데, 그래서, 우리가 정말도 돈을 제대로 벌고 있는 걸까? 원래 통계라는 게 그런 거다라고 이야기하면 속 편하겠지만, 이런 지표들을 가지고 국민들을 잘못 이해시키니 문제다. 

이런 사정은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의 문제가 되었다. 

2010에 월마트를 설립한 샘 월튼(Sam Walton)의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자 여섯 명의 재산은 미국 소득 분포에서 하위 40퍼센트에 속한 이들의 재산을 다 더한 것보다 많았다.(169쪽) 

위 도표는 미국에서 1인당 GDP의 성장과 실제 가계에서의 수입을 비교한 것이다. 1인당 GDP는 지속적으로 상승하지만, 가계의 실질 소득은 제 자리 걸음이다. 
(한국은 아예 뒷걸음질 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뒷걸음질치는 도표를 들이밀었다간 '종북좌파'로 몰릴 게 뻔하다.) 

빈부격차는 더 심해지고 상위 1 - 2 %의 부는 계속 증가하고 중간은 사라지고 하위만 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 문제는 너무 심각해서 다양한 비판과 지적, 극복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거머쥐고 있는 쪽에서 쉽게 동의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불평등의 주된 원동력은 우리의 경제 체제를 떠받치는 기술의 기하급수적 성장, 디지털화, 조합적 혁신이었다. (171쪽) 


그리고 빠른 디지털화와 함께 금융의 세계화로 인한 시장의 급격한 변화는 다양한 금융 위기로 나타났다.


그런 한편으로 이윤과 수익이 모두 증가하고 있을 때는 일자리를 없애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다가 경기 후퇴가 일어나면, 통상적인 경영 활동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고통스러운 업무 능률화와 해고를 단행하기가 더 쉬워진다. 경기 후퇴가 끝나면 이윤과 수요가 회복되지만, 일상적 노동을 하는 일자리는 다시 늘어나지 않는다. (179쪽) 


이제 실업은 고질적인 사회 문제가 될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와 데이비스 리카르도(David Ricardo) 같은 19세기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기계화로 노동자의 운명은 점점 더 악화되어 결국 생존 임금 수준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184쪽) 


그리고 빠르게 디지털화된 기계나 소프트웨어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 부는 한 쪽으로만 치우쳐 커져갈 것이다. 


매번 시장이 더 디지털화할 때마다, 이 승자 독식 경제는 조금 더 압도적인 양상을 띤다. (194쪽) 


디지털 상품은 엄청난 규모의 경제를 이룸으로써, 시장 선도자에게 엄청난 비용 우위를 제공하고 여전히 상당한 이윤을 올리면서 경쟁자를 가격으로 물리칠 수 있게 해준다. 일단 고정비가 해결되면, 각각의 한계 단위는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197쪽) 


하지만 이런 일자리 감소 문제라든가 상위 1~2%에 몰린 부의 문제를 지적한다고 해서 인정받을까? 


그래서 최근 몇 년 동안 기술이 일자리의 순 파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대부분 주류 경제학자에 끼지 못했다. (222쪽)


1983년 레온티예프는 “보다 정교한 컴퓨터의 도입으로 인하여 마치 농경 시대에 있어서 말의 역할이 트렉터의 도입에 의해 감소되고 제거된 것처럼,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로서의 인간의 역할이 감소하게 될 것”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이를 거부한 것도 아니고 이로 인해 일터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위한 어떤 정책을 마련한 것도 아니다. 


인간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는 기계가 더 발달할 수록, 비슷한 기능을 지닌 인간의 임금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학과 경영 전략이 주는 첫 번째 교훈은 가까운 대체물과 경쟁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이 비용 우위에 있다면 더욱 더 말이다. (230쪽) 


우리는 지금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책은 이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서적들과 도표, 통계들로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부자가 되지 못하고 일자리를 빼앗기게 될 것인가를 지적한다. 반대로 해석하지만 부자가 어떻게 되고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거의 없어 보인다. 

아마 유럽의 저자들이었다면 아마 '연대'를 외쳤을 테지만, 저자들은 소박하나마 몇 가지의 조언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 그 이야기를 한다면, 이 책을 읽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2014년 하반기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고 나에게 대단한 시사점들을 제시했다. 저자들의, 다소 낙관적인 태도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이 책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책 표지 뒷면에 적힌 마이클 스펜스, 로렌스 서머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등의 찬사는 결코 거짓말이 아니다! 강력 추천! 





제2의 기계 시대 - 10점
에릭 브린욜프슨 & 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 옮김/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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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인터뷰,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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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인터뷰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팀(지음), 21세기북스 



'조중동'이라는 단어가 거의 일반명사화가 된 지금, '조선일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들어간 책을 읽는 기분은 좋지 않다. 차라리 경향신문이나 한국일보가 들어간 책을 읽는다면 좋겠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조선일보의 위클리비즈(Weekly Biz)의 기사 경쟁력은 웬만한 비즈니스 저널 못지 않기로 유명하다. 특히 매주 비즈니스 세계의 리더들과의 인터뷰 기사는 그 내용 면에서는 탁월함마저 풍긴다. 일반적인 질문을 던져도 보통 수준 이상의 식견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인터뷰 질문에서부터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현재까지 3권이 출간되었고(<<위클리비즈 i>>, <<위클리비즈 인사이트>> 등), 이 책은 2014년 4월에 출간된 책이다. 30명의 리더와 인터뷰를 했고 각 챕터마다 각기 다른 내용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점은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이 변화의 와중에서 우리는 변해야 할 것은 과감하게 변해야 하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다른 업체가 성공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릅니다. 다른 업체가 우리를 쫓아오지 못하도록 어떻게 블로킹할 지도 생각하지 않고요. 우리는 에너지의 100퍼센트를 오로지 우리 제품을 더 좋게 만드는 데만 집중합니다. 이런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 필 리빈(에버노트 CEO) (183쪽)


'100-1=0'이 저희의 모토입니다. '100개가 괜찮아도 불량품이 1개 나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지요. 
- 리만탓(세계 최대 중화요리 소스 이금기 명예회장) (305쪽)
 

하워드 스티븐슨 교수(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가만히 있지 말고 과감하게 벌떡 일어나 뛰어들어야 합니다. 단지 정해진 트랙을 도는 경주마가 되어서는 안 돼요. (...) 경주마는 단순히 골인 지점만 보고 달립니다. 반면에 야생마는 가야 할 곳이 어딘지 피할 곳이 어딘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때로는 천천히 달리기도 하지요. 경주마는 달리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만 야생마는 생각하기 위해 달리기를 멈춥니다. (98쪽) 

그리고 전환점inflection point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전환점이란 지금까지 달려오던 것과 전혀 다른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트는 것입니다. 단지 살짝 변화만 주는 차원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그 전환점에 우리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겁니다. (97쪽) 



그렇다면 전환이란 어떤 걸까?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인 카림 라시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만의 틈새 언어niche language를 만들 수 있도록 사고 방식 자체를 완전히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전과 철학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따라하기' 일변도의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과연 창조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138쪽)  



GE 부회장인 존 라이스는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실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리더십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간단해요. 하겠다고 말한 것을 실천으로 옮기고, 되겠다고 한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당신의 투자자와 고객, 직원들에게 하는 약속이지요. 도대체 누가 오로지 더 높은 다른 자리에만 신경을 쓰고 거짓말을 일삼는 상사를 믿고 따르겠어요." (281쪽)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변화는 움직이지 않는 이들에겐 위기이고 변화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기회다. 마이클 모리츠 세쿼이아 캐피털 CEO의 지적은 벤처캐피털에 대한 것이었지만, 실은 변화를 꿈꾸는 우리 모두에게 향한 말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 벤처캐피털 업체를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을까요"란 질문에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성공하는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되고 싶다면 실리콘밸리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거만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실리콘밸리가 아니면 최소한 중국에 가야 해요." (243쪽) 



마지막으로 오니시 마사루 JAL 회장과의 인터뷰 내용도 인상적이었는데, 인터뷰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목소리는, 왜 그가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작년 그의 책 <<회사는 어떻게 강해지는가>>를 읽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그의 책들을 챙겨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 - 이나모리 가즈오 (233쪽에 재인용)



인터뷰 기사들을 모은 책이라, 속도감 있게 읽히지만, 내용은 만만치 않다. 아마 몇몇 내용들은 노트를 해가며 읽게 될 것이다. 





더 인터뷰 - 8점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팀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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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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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정표에는 중기청 창업 지원프로그램인 팁스 사업설명회 참석이 있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만만치 않게 여겨지는 건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다. 


2015년도 벌써 15일 지났고 올 한 해의 모습을 그려보지만, 알 수 없다. 

나는 올해 진짜 도전과 모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저 멀리 1월 1일의 태양이 떠올랐다. 저 태양처럼 나도 떠오를 수 있기를




방배동 사무실 근처 가끔 가서 커피를 마시는 '커피프레지턴트' 




버스에서 내려 건널목을 지나가려는 순간, 눈에 들어온 낙서. 혹은 그래피티. 




오랜만에 후배를 만나 오뎅에 정종을 먹었다. 





며칠 전 술에 취해 서재에 앉아 오래, LP를 들었다. 마크 알몬드 베스트앨범. 




그리고 산타나의 문플라워 1, 2집. 이걸 LP로 가지고 있는데, ... ... 

산타나 팬도 이제 거의 없나 보다. 

내가 알기론 문플라워 1,2집을 LP로 가지고 있다는 건 참 드문 경우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인데, 법인 설립, 사업 준비 등 해야 할 일이 많고 대부분 내가 몰랐던 것이었다. 아이구. 


그리고 술 취해 이것저것 올리는 것도 1-2년 후에 하지 못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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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랬지, 지난 날의 소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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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랬지, 지난 날의 소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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