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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심리학, 아브라함 H.매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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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심리학

아브라함 H. 매슬로(지음), 정태연/노현정(옮김), 문예출판사 




아브라함 H. 매슬로(Abraham Harold Maslow)는 너무 유명하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의 책을 읽은 사람? ... 없다. (그러면서 다들 아는 척 세미나 발표할 때마다 매슬로의 5단계 도표를 들고 나오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그들이 아는 건 뭘까? 이런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래서 읽었다. 그리고 실망했다. 


그가 유명하게 된 건 모든 마케팅 교과서에 욕구 5단계 이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래 도표와 같다. 


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이것이 실제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 또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거나 실행할 때, 매슬로를 떠올린 적은 없다. 이 무슨 괴상한 일인가. 


이 책은 매슬로의 논문들을 모아 출간한 것이다. 그의 심리학을 알기에 충분하지만, 종종 단편적이고 신비주의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또한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다. 즉 임상심리학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을? 


신비적이고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선 이 책이 아니라 신비주의자들의 책이나 철학책, 종교학 책이 더 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싶다면 편집자 서문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결핍동기의 영향을 받아하는 활동은 흐릿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과 같고, 이러한 결핍동기의 효과를 제거하는 것은 흐릿한 렌즈를 선명한 렌즈로 바꾸는 것과 같다. 따라서 기본적인 결핍 동기를 안정적으로 충족시킨 사람은 이 세상을, 즉 모든 측면에서 실체를 더욱 선명하게 볼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해 더는 현실에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더는 결핍으로 생긴 두려움과 의심으로부터 영향 받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더욱 수용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과 상호 작용할 것이고 세상을 더욱 사랑하고 (... ...) 자기 실현의 핵심적 부분이며, 인간 생애를 통해 완전히 다른 종류의 동기 출현하는 지점이다. (15쪽) 


매슬로는 결핍동기와 성장동기를 대립시켜면서 자기 실현하는 사람들의 성장동기를 부각시킨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처럼 피할 수 없는 결핍 동기의 잔재들이 짧은 순간일지라도 사라져서, 현실을 가능하면 최대한 명료하고 직접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때가 있다. 이 때는 잠시나마 그 사람이 최고의 절정 단계에 올라와서, 그곳에서 '황홀감, 경이로움과 경외감'으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매슬로는 이러한 경험을 '신비적 체험'이라고 명명했다. (30쪽) 



절정경험 상태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최상의 상태에서 최대한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신이 최고의 권능 상태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236쪽) 



매슬로는 인간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자기 실현을 위한 다양한 학설들을 제시한다. 하지만 과학적이진 않다. 


매슬로의 세 가지 주요심리적 개념 - 1)동기의 위계적 구조 2)자기 실현 3)절정 경험 - 가운데 단지 첫번째 개념만이 주류 심리학에 수용되었다. (44쪽) 



왜 수용되지 않았는가를 알기 위해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또한 동기의 위계적 구조는 그냥 보면 아는 것이고 저 위계 구조로 되어 있다가 보다는 어떤 동기가 선행하고 어떤 동기는 후행한다는 것 정도로 만족하면 될 것이다. 가령 어떤 이는 배고픔을 잘 참지만, 어떤 이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매슬로의 주저는 <동기와 성격Motivation and Personality>로 알려져 있으나, 번역본은 나오자마자 바로 절판되었다. <존재의 심리학>을 읽기 시작했을 땐, <동기와 성격>도 구해 읽을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싹 사라졌다. 




존재의 심리학 - 6점
아브라함 H. 매슬로 지음, 정태연.노현정 옮김/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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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 - 2015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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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짬뽕을 폰 카메라로 찍기란 쉽지 않았다. 임시로 있는 사무실 근처 중화요리점에서 짬뽕에 이과두주를 마셨다. 붉은 색으로 장식된 벽면 아래 짙은 갈색 나무 무늬 테이블과 검정색 천이 씌워진 의자에 앉아, 바람과 오가는 사람들에 흔들리는 출입문을 잠시 보았다. 





이것저것, 그냥, 잠시, 보는 시절이다. 정해져 있지 않아 자유롭고 정해져 있지 않아 불안한 시절이다. 자유와 불안, 혹은 두려움은 등가적 관계를 이룬다. 최초의 인류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가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자유 속에 깃든,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도 함께 가지고 왔다.


하지만 중년이 되자, 자유는 보이지 않고 불안과 두려움으로만 채워졌다. 마음 속에서, 육체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 술로 태워지고 술로 열광하고 술로 위로받는 건 자유와 사랑, 순결과 불륜이지, 불안과 두려움은 아니었다. 





선사시대 우연히 발견되었을 술은, 인류에게 두 번째로 값진 선물이다. 그래서 나는 어김없이 짬뽕에 독주를 마신다. 싸구려 독주를. 


이과두주. 이 술은 중국 사람들에게 소주와 비슷한 술이다. 실은 소주보다 더 싼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평균 56도. 



출처: 성학주류 홈페이지(http://www.sunghak.com/)


예전에 마셨던 이과두주는 나쁘지 않았는데, 최근에 마신 이과두주는 알콜 냄새가 심하게 났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그런 걸까. 어느 주류 회사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온 이과두주 사진이다. 차례대로 알아보면 아래와 같다. 



1. 홍성이과두주(55도, 유한회사 금용 수입)

3.우란산이과두주(56도, Niu Lan Shan Er Guo Tou Jiu,100ml (주)풍원주류 수입 )

4.우란산이과두주(56도, Niu Lan Shan Er Guo Tou Jiu, 125ml (주)풍원주류 수입 )

2(?)/5. 천진식품 제조 이과두주((유한회사 금용 수입)) 



우란산이과두주를 마셨는데, 맞지 않았다. 조만간 다른 이과두주도 마셔볼 요량이다. 


십 수년 전 크리스마스 근처, 대학원 시험을 떨어지고 짬뽕 국물에 이과두주를 마시고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런데 그 때 대학원엘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때로는 떨어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학문으로 유리된 세상 속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 채, 고귀한 언어의 자존심만을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 때 나와 함께 술을 마시며 나를 위로해주시던 분은 계속 공부를 하셨고 지금도 공부를 하고 글을 쓰시지만, ... ...어느 방향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결국 어느 게 정답인지 모를 땐 자신이 정하는 게 정답인가. 





그리고 나는 짬뽕을 집에서 해 먹었다. 재료의 부실함으로 인해 마법의 가루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나름 선방했다. 다음 주부턴 여의도에서 프로젝트 PM을 맡기로 했다. 준비 중인 사업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해졌고, 이 지지부진과 무관하게 경제적 삶은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책 읽고 음악 듣고 글을 쓰는 삶을 한 때 동경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한 것은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는 이들의 무능함 때문이었다. 춘추전국시대에 난립했던 무수한 사상들은 학문의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었지만, 지나친 학문 논쟁과 쌀 한 톨 만들지 않으면서 사사건건 중앙정부의 정책에 토를 달던 학자들이 싫었던 것이다. 지리적으로는 통일되었으나, 사상적으로는 통일되지 않았고, 통일할 생각도 없었던 셈이다. 무술이라면 싸움이라도 해서 결판을 낼 수 있었지만, 사상과 학설은 이와 같지 않았다.  이후 시간이 지나, 한 무제에 와서야 유교로 사상적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무언가 만들고 생산하며 기여하는 삶. 이게 좋다. 그건 사적인 차원에서 쓰여지는 글 이상이어야 한다. 무언가 생산할 수 있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글이라면 괜찮을 게다. 그런데 그런 글이 어디 쉽나. 잡글이 길어졌다.

*     *

재독철학자 한병철의 책 <<투명사회>>를 읽기 시작했다. 결국 한병철의 책 두 세 권을 더 구입했다. 그가 한국에 있었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한국에도 한병철 교수 정도 내공이 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독일적 환경 아래에서 다른 일상을 보내며 고민했다면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글이라 여겨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런 글을 쓰지 못한다. 아니 쓸 수 없다. 우리가 마주치는 한국 사회의 일상은 구한말 조선 시대지, 21세기 유럽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은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제 3 세계 한국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만의 고유한 시각, 고유한 해법, 고유한 이론이 나와야 하지만, 인문학은 이미 수입 보따리 상이 되어버렸거나, 아니면 조선 시대의 성리학이나 또는 동양의 고전들을 들이대거나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나는 반대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걸 늘 확인받고 싶어하고, 나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이 세상 한 명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그리고 이게 현대인이다. 한병철 교수는 <<투명사회>>에서 노출된다는 것에 대한 폭력성을 지적하지만, 우리는 노출됨으로써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음을 그는 알지 못한다. 그 위안에 주목하지 않고, 왜 우리는 그 위안에 몸을 맡기게 되었는가를 묻지 않고 투명사회의 한 부분으로 지적하며 그것의 폐해만을 드러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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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Derrida: 데리다 철학의 개론적 이해, H.키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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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데리다 철학의 개론적 이해 Jacques Derrida zurEinführung

H. 키멜레(Heinz Kimmerle) 지음, 박상선 옮김, 서광사, 1996 



  




데리다에 대해선 대학 시절부터 많은 논문과 책을 읽었지만, 늘 모호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지만, 결론은 같다. 그의 방법론 - 미국에선 흔히 '해체'라고 부르는 - 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늘 남는다. 


물론 "차연의 철학"이라는 명칭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명칭은 - 아도르노에 의해 발전된 동일화하는 사유(identifizierendes Denken)에 대한 비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차연[다름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동일화시키지 않음, 즉 다른 것 혹은 구별되는 것을 같은 것이나 동일한 것으로 여기지 않음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연적 사유는 통일적이고 그 자체로서 증명할 수 있는 철학적 흐름으로 특징짓는 일은 시살 그 의미에 거슬리는 일이다. 차연적 사유는 그 자체 다른 것일 뿐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 속에 있는 것이지 항상 같은 것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데리다의 차연의 철학이라고 말 때 그것은 동일한 것이거나 동일한 것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자체가 끊임없이 바뀌는 철학이다. - 15쪽 


끊임없이 바뀌는 게 철학이라니! 


차연은 "흔적의 유희"로 완성되고 있으며, 의미도 없고, (눈 앞에 있는 물건처럼)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유희에서 스스로-자기와-구별됨(Sich-von-Sich-Unterscheiden)은 하나의 흔적으로서 이 흔적은 또다시 지워지는 흔적이다. - 93쪽 


데리다는 자주, 나에게 문학 비평처럼 읽힌다. 그는 텍스트 안으로 텍스트 행간 사이에 숨은 의미, 혹은 의미의 부재를 흔들며 해체한다. 그에게는 글쓰기가 첨예한 문제로 떠오른다. 하긴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만큼 '개념'과 '개념의 해체'에 매달린 적도 없으리라.  


책의 폐쇄성(Geschlossenheit [끝맺혀짐, 닫혀짐])을 두 배로 늘림으로써 사람들은 그 폐쇄성을 부수고, ... 그 순간부터 ... 책 속의 책을, 원천 속의 원천을, 중심 속의 중심을 읽을 수 있으므로 그 때부터 심연(Alggrund [바닥이 없음])이, 무한히 다양화되는 끝없음(Un-grund)이 시작된다. 다른 것이 같은 것에 있다[있게 된다]. 

- 데리다, <<글쓰기와 차이>> 중에서 (65쪽에서 재인용) 



데리다 철학에 대해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은 값진 선물이 될 수 있겠지만, 데리다는 철학자다. 아니, '철학서에 대한 해체 비평가'라는 표현이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철학이라고 할 때, 그건 건축적(구축적)임을 뜻한다. 그러나 데리다는 반-건축적이거나 탈-구축적이다. 그는 그것을 지향했고 철학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은 몇 개의 단어로 모이긴 하지만, 체계적이지 않고 도리어 병렬적이고 동어반복적이다. 데리다의 다양한 전략과 실천들을 간략하게 보여주면서 데리다가 일관되게 이야기한 '차연'의 의미를 되새긴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할 당시(1998년 경으로 기억된다), 데리다 철학에 대한 소개 서적도 얼마 없었지만, 그나마 이 책이 제일 나았다. 지금은 어떤 지 모른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 책이 어려운 철학책임에 분명할 테니, 일반 독자에게 권할 책은 아니다.  아마 지금도 데리다 철학 소개서로 손색이 없을 테지만, 굳이 지금 데리다를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는 인문학 전공자에게도 마찬가지일테다. 차라리 그 시간에 서양철학사를 읽거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추천한다. 아니면 아도르노의 다른 책을. 이 책을 옮긴 박상선의 말대로 데리다는 아도르노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며 '아도르노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Jacques Derrida (1930 - 2004)



데리다에 대한 소개는 아래 글이 좋을 듯 싶어, 옮긴다. 

[21세기에 보는 20세기 사상지도]형이상학의 폐쇄적 원리 해체 - 진태원(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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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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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城 

김화영(지음), 문학동네 






여행은 나의 삶이 남의 삶이나 공간을 만나는 감촉이며 공명(共鳴)이다. - 7쪽 




'예술기행'이라는 부제를 읽곤 프랑스의 여러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대부분 프랑스 문학 작품과 연관된 기행 산문집이다. 예술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미술이나 조각, 음악에 대한 다채로운 내용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대를 했다. 


김화영, 그는 1974년에 이미 카뮈 연구로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카뮈에 있어선 국내 최고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년 그는 어느 형편없는 출판사의 노이즈 마케팅에 휘말렸다. 그 때 나온 기사들이나 광고를 거의 읽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번역 문제는 늘 있어왔던 것이고 해석의 차이는 존재할 수 있다. 불어를 한글로 옮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며, 김화영 교수의 번역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는 있기에. 하지만 내가 그 기사들이나 광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예의 없고 버릇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성실한 프랑스 문학 연구자이며 한국 독자들에게 프랑스 문학을 소개해왔으며 카뮈 전집을 한국에서 읽을 수 있게 한 老교수에 대해 '엉터리 번역'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마케팅을 했고, 오래 전부터 자신들의 형편없음을 여러 기사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던 여러 일간지의 기자들마저도 앵무새처럼 '엉터리 번역'이라고 옮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절망적이었던 것은 이런 상황에 독자들은 자신들의 무지몽맹함을 뽐내며, '엉터리 번역'에 동조하며 흥분하고 있었다. 실은 지금도 인터넷 서점 리뷰들을 보면 그 때 올라간 많은 리뷰들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새움출판사의 <<이방인>>은 영어 번역본을 한글로 번역했고 이를 프랑스어 원문과 대조했음이 드러났다. (관련 사항은 엔하위키 미러 - 이방인 항목참조) 더구나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indifference님 블로그참조) 하지만 그래서? 일은 이미 벌어졌고 새움출판사는 자랑스레 이 책을 팔았고 지금도 팔고 있다. 세상은 이렇다. 상처는 아물지 않고 상처를 낸 사람은 잘 살아갈 것이다.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서두에 나오는 여러 성들의 모습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성만 남거나 그 성을 가지고 있던 귀족은 없고 그 후손도 없고 관리인만 남아있거나 ... ... 그런데 성마다 남모를 사연들이 있어서 하나하나 놓칠 수 없다. 아마 지금 프랑스에 가서 그 성들을 보는 것과 이 산문집에서 표현된 성들과는 벌써 거의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 책은 젊은 불문학자의 글에서부터 노년에 이른 불문학자의 글이 한 곳에 담긴 것이다. 첫 장 '예술의 성'은 이미 1980년에 열화당을 통해 문고판으로 나온 바 있었지만, 책 후반부의 여행 산문들은 1990년대 이후의 흔적들이다. 


나에게 이 책은 여러 성들의 모습과 이야기가 좋았다. 서양미술사에서 언급되는 성들은 그리 많지 않고 조형적 혁신을 이룬 대표적인 작품 위주이지, 그 성에 담긴 사연 위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몇 명의 작가들, 특히 샤토브리앙을 알게 된 것은!! 이미 샤토브리앙에 대해선 포스팅했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거나 기행 산문집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하지만 우리가 요즘 흔히 접하는 그런 기행 산문집 - 글을 거의 없고 사진들로만 가득찬 - 이 아니다. 보기 좋은 사진들 대신 프랑스 소설가나 시인의, 기억하고 노트해 둘만한 글들이 인용된다. 그러니 이 책의 독자들은 정해져 있는 셈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이방인>> 번역을 언급한 것은 그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몇몇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사태가 바로 잡히긴 했지만, 우리가 아는 바 기자나 학자가 아니라 이름 없는 블로거가 실질적인 대응을 했기 때문에 더 안타까웠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이 자주 접하게 되는 역자들이 있다. 이휘영, 김현, 민희식, 김화영, 이재룡 ... 그들의 노고를 잊지 말자.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城) - 8점
김화영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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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의 적은 전략이다 Good Strategy Bad Strategy, 리처드 루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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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의 적은 전략이다 Good Strategy Bad Strategy 

리처드 루멜트 Richard P. Rumelt(지음), 김태훈(옮김), 생각연구소 






전략을 야심, 리더십, 비전, 기획, 경제적 경쟁 논리와 동일시하는 관점들이 있다. 그러나 전략은 이러한 것들과 다르다. 전략적 작업의 핵심은 주어진 상황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찾아내고 거기에 대응하는 행동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파악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일관된 접근법을 세우는 것이다. 

- 6쪽 



원제인 <<좋은 전략 나쁜 전략>>이 의미하듯이 많은 기업들이 오늘도 기업 경영 전략을 세우고 발표하지만, 대부분은 전략이 아니거나(야심, 비전 등등과 같은 것일 뿐), 전략이긴 하지만 형편없이 나쁜 전략이라고 루멜트는 말한다. 



좋은 전략은 진단, 추진방침, 일관된 행동으로 이루어진 '핵심요소'라고 부르는 논리적 구조를 가져야 한다. 조직이 직면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진단한 다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접근법을 담은 추진 방침을 만든다. 이 추진 방침은 교통표지판처럼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지만 세부적인 여정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이 일은 타당한 방법론과 자원 할당을 결정하는 일관된 행동이 맡는다. 

- 12쪽 



루멜트는 좋은 전략이란 어떤 것이며 좋은 전략의 사례, 좋은 전략을 수립, 실행하기 위해 리더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기술하고 있다. 



나쁜 전략은 대개 계산 착오가 아니라 좋은 전략을 수립하는 어려운 작업을 회피하는 데서 나온다. 

- 71쪽  



전략 수립은 어렵다. 특히 제대로 된 전략 수립은. 그리고 그것의 실행은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은 전략을 수립할 때, 서로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정치적 수준에서의 전략을 수립하곤 한다. 그리고 그 전략에 맞추어 실행 계획을 수립하고. 



전략에서 선택은 필수다. 모호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전략을 가지려면 다른 길을 버리고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 76쪽 



사람들은 언제나 영리한 방법만 찾으면 상충하는 목표들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략은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목표를 결정하고 거기에 자원과 행동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목표를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 104쪽 


모호성을 제거하고 목표에 집중하는 것. 이것이 전략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성공적인 전략 추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항목들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요즘 자주 경영 전략 서적을 읽는다. 이번 책은 조금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가 중반 이후부터 정독을 했다. 의외로 내용이 빡빡했다. 월마트의 사례나 롤 인터내셔널의 사례는 무척 흥미로웠다. 


"어떤 사업이든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하여 고유한 입지를 구축해야 합니다." - 스튜어트 레스닉(롤 인터내셔널 CEO) 

- 181쪽 재인용 



좋은 경영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수립하고 실행하는 경우,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만들어 성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경쟁우위란 '경쟁자보다 낮은 비용에 제품을 생산하거나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경쟁우위가 창출하는 가치를 늘리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중 최소한 하나는 이루어야 한다. 


- 경쟁 우위의 수준 심화

- 경쟁 우위의 범위 확대

- 경쟁 우위에 바탕을 둔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수요 촉진

- 경쟁자들의 모방을 막는 격리 체제 강화(* 격리체제: 특허나 지적 재산권 같은 것)



책의 후반부는 경쟁 우위와 전략 실행의 실제적인 접근을 다루고 있다. 경영 전략 실무를 담당하거나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가 될 것이며, 특히 경영 전략 수립에 있어 좋은 지침을 얻을 수 있다.






전략의 적은 전략이다 - 10점
리처드 루멜트 지음, 김태훈 옮김, 이동현 감수/생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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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중얼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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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째가 아니라, 3주째다. 인후염에 걸린 지. 선천적으로 목 부위가 약해 가을에서 겨울 넘어갈 쯤, 매해 목감기에 걸렸다. 몇 번은, 그 때마다 다른 여자친구가, 서울 변두리에 살던 나에게 약을 사다 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십 수년 전이니, 나도 나이가 든 건가. 아니면 그냥 세월이 흐른 건가.  


해마다 마음이 건조해지고 아침해가 방 안 깊숙이 들어오지 못할 때, 목 안이 약간이라도 불편하면, 유자차를 마시고 목에 수건을 감고 자곤 한다. 인후염에 걸리기라도 하면, 매우 심하게 앓아눕기 때문이다. 그런데 3주 전부터 목이 아프기 시작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유자차를 마시고 물을 하루에 몇 리터를 마시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아직 앓아눕진 않았지만(필사적으로 앓아눕지 않기 위해 술을 마시면 간경화가 일어난다는 감기 약까지 먹었으니), 이번 인후염을 길고 느리게, 하루, 이틀, 사흘, ... 그렇게 3주 넘게 내 목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불편한 목을 따라, 마음도, 무릎도, 팔꿈치도, 발등도, 사랑도 불편해졌다. 


아직까지 인후염을 사라지지 않았고 봄은 오는 듯 하더니, 지난 겨울, 건조한 추위의 흔적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사랑하는 그대여, 바쁘고 쓸쓸한 봄이 될 것같구나. 


사무실에서 나와 집에 오면 7시 30분. 저녁을 먹고 아이와 잠시 놀다 보면 금세 9시, 10시가 된다. 그제서야 뭔가 읽고 메모해보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빈둥거리다 잠자리에 든다. 계절 사이의 잠은 으레 거칠고 딱딱한 표면을 소유하고 있다. 잠은 언어를 잃어버렸고 사랑은 추억으로만 남아 사라지고 있었다. 가끔 자다가 한 쪽 팔을 올려 머리 위, 저 너머가 갖다놓는다. 그러면 몸 속으로 사랑이 들어오는 느낌이거나, 이 세상에서의 삶이 착각이 아닐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그러게, 내 삶 전체가 착각이었으면, 내 지나간 사랑이 거짓말이었으면, 그녀에게 했던 고백이 허위였으면. 





해가 뜨고 달이 뜨지만, 그 해가 그 해이고, 그 달이 그 달이다. 변화란 없고 오직 정지만 있을 뿐이다. 해마다 봄이 오듯, 인생의 수레바퀴는 죽음을 향한다. 말로였던가, 야스퍼스였던가, '오직 죽어가는 나만 있을 뿐'이라고 했던 이가. 그래,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랑이 아니라 눈에 띌 새도 없는, 죽을 병에 걸렸다. 어차피 위로와 위안은 보잘 것 없는 가식보다 못하고, 사랑은 허위와 허상으로 세워진 유리성과도 같았다. 하긴 그 유리성마저도 지키지 못했지.  


퇴근길에 문득 하늘을 보니, 어두워진 푸른 빛깔 사이로 초생달이 보였다. 초.생.달. 사춘기 시절 이후 일상에선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단어다. 그렇게 초.생.달.이 떠있었다. 




오늘, 여의도공원. 아메리카노 커피 하나 들고 나와 오전 회의를 떠올렸다. 나는 금방 지쳤다. 그리고 모든 사항들이 협의 사항이 되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그런 일들이 나에게로 왔다. 다시 협의를 하고 결정을 할 것이다. 원래 내 일이었고, 내 일이 아닌 것도 내 일이 되는 팔자를 타고 났다. 정말 내 일을 하고 싶어 잠시 회사와 회사 사이에 내 몸을 위치시켰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내일도 종일 바쁠 것이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봄 햇살 아래에서 잠시 내 처지를 잊을 것이다. 


가끔 비즈니스 미팅이 있을 때나 나오던 여의도를 매일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는데, 금융회사를 다니는 듯한 이들의 천편일률적인 복장은 나에게 꽤 불편스러워 보인다. 어두운 색의 깔끔한 정장, 자켓 깃엔 회사의 로고 배지를 달고 머리엔 젤을 발라 뒤로 넘긴... 금융이라는 게 실물 경제와는 관련없고 실물 경제의 원활한 유통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젠 실물 경제와 무관하게 너무 커져(거품이 잔뜩 끼어) 실물 경제마저 위축시키는 시대가 되었건만, ... ... 우리는 알면서도 그저 휩쓸려 갈 뿐이다. 아니, 대다수는 모르겠구나. 



지난 주말에 황지우와 천상병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차마 시집은 읽지 못하겠더라. 천상병 시인은 이제 없고 황지우는 노교수가 되었으니, ... ... 그나저나 나는 언제 긴 글 한 편 써보나. 하긴 글 쓸 자신마저도 이젠 사라지고 있으니... 모든 게 지나간 사랑보다도 못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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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한 줄은 무엇입니까, 김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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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한 줄은 무엇입니까 

김철수(지음), 청림출판 




계속 공부를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긴 계속 공부를 하고 있긴 하다. 그냥 습관이기도 하지만, 뭐랄까, 공부가 팔자인 듯 싶기도... 그 공부가 돈벌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데 인생의 곤혹스러움이 있다고 할까. 그래서 가끔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만약 대학원에 진학했다면, 아직도 글을 썼을 테고 이름과 부를 얻는 대신 고집을 넘어선 아집스러운 순수함만 추구했을 테니 말이다. 


종종 이런 책을 읽는 건 나에게 신선한 자격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평범하다고 하면 저자가 화를 낼려나. 직장인이지만, 시카고 IIT 디자인대학원에서 HCI를 전공했으며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혁신시키며 책까지 내었으니, '평범'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재수를 해서 대학에 한 해 늦게 입학한 고등학교 동기에게 왜 1년 더 공부를 하는데, 성적은 오르지 않고 대학시험에 또 떨어지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는 고 3 때보다 더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 당연한 이야기인데,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다소 충격스러웠다. 


그랬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을 보며 그/그녀를 부러워하며 나도 언젠가 그/그녀처럼 될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또는 그녀가 되지 못한다. 이유는 당연하다. 그가, 그녀가 했던 노력도 하지 않고 그런 노력을 지탱할 열정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오늘도 부러워 하기만 한다. 


이 책은 저자의 그런 노력이 담겨있다. 이 책이 읽을 가치가 있다면, 자신의 노력을 솔직하게 정리하며,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그의 노력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는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서 배움을 구하고 그것을 정리한다. 그 정리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자기 인생의 한 줄 컨셉을 도출하는 실천적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맞는 실천법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실천법을 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특히 국내 저자의 책은!

(국내 출판사들은 이렇게 국내 저자들을 발굴해야 할 텐데, 번역 출판물만 팔리고 있으니...) 


나에겐 읽기 쉬운 책이었지만, 이 책과 저자에겐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조금 더 성실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내 모자람만 보이니, 큰 일 났다. 이를 어쩌면 좋으랴. 



사족) 저자 소개에 HCI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 단어에 대한 설명이 없다. 내가 이 단어를 들은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단어가 되었지만... Human-Centered Innovation이라는 단어의 약자다. 그런데 Human-Computer Interface도 HCI다. 10년 전만 해도 후자로 알아들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 정리해놓은 몇몇 글들이 있다. 지금은 검색하면 훨씬 좋은 글들이 많지만... 

http://intempus.tistory.com/category/Business%20Thinking/Design%20Thinking 







당신의 한 줄은 무엇입니까 - 8점
김철수 지음/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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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펀딩, 더멋 버커리(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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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펀딩 Start-up Funding

더멋 버커리(지음), 이정석(옮김), e비즈북스 






경영에 있어서 첫 번째는 사람이고, 두 번째도 사람이고 세 번째도 사람이라 여겼다. 경영진은 아니었지만, 중간관리자로 팀웍을 중요하게 여겼고, 모티베이션이나 리더십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실은 답이 없는 고민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사람이 있어도 전략이나 실행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걸 알았다. 심지어 사람을 키우는 것도 전략이었다. 당연한 것인데, 결국 겪어봐야 안다. 그 후부턴 경영 전략을 참 흥미롭게 읽었다. 하지만 책은 책일 뿐, 실제는 아니다. 


작년말 회사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 두고 사업을 모색했다. 내 것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나는 자주 돈까스 식당 옆에 돈까스 식당을 내어도 된다고 말했다. 사업에는 비즈니스 모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이지, 옆에 잘 되는 돈까스 식당이 있다고 해서 망하는 건 아니라고. 남산 돈까스 식당들처럼 유명한 길이 될 수도 있을 터. 


사업 계획서 쓰는 것이야 자신 있었고 그동안의 경험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음을 몇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알았다. 


1. 투자를 받는다는 건 귀중한 남의 돈에 책임을 진다는 것임을. 


2. 팀원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일한다는 건 그의 삶과 그의 가족에 대해 일정 부분 이상 책임을 진다는 것임을. 


3. 사업을 추진하는 것과 법인을 세워 이를 운영하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결국 나는 성급한 추진일 수 있음을 알았고 뒤로 미루는 것도 방법이라 여겼다. 나는 법인 설립이나 지분 구성, 투자자를 만나 사업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도리어 내가 짊어져야 할 다양한 책임들의 무게만을 느끼고 있었다. 리더가 흔들리면 사업도 흔들리고 회사도 흔들린다. 안정기에 들어선 기업이라면 모르겠지만, 초창기 기업은 위험하다. 하나하나가 잘 조율되어야 하고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설령 그러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될 어떤 지점을 향해 걸어가고 뛰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려운 일임을 ... 


그러는 동안 이 책을 읽었다. 2007년에 나온 책인데, 다소 늦게 번역된 듯 싶기도 하다. 최근의 스타트업 열기에 대해서 나는 부정적이다. 아직도 한국은 실패에 대해 가혹하고, 도전보다 안주를 가치있게 여긴다. 성공하면 찬사를 보내지만, 실패하면 '그럼 그렇지'라며 핀잔만 일삼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통용되지 않을 유일한 OECD 국가일 것이다. 그러니 실패하면 안 된다. 


이 책은 창업가, 혹은 창업 기업이 어떻게 투자를 받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책은 중요한 지점을 매우 정확하게 짚어준다고 할까.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너무 기본적인 내용인가. 



- 투자자도 실패하기 싫다.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이 성공하는지 여부를 단계별로 체크한다. 그래서 한 번에 그 기업에게 필요한 모든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 기업 성장의 단계를 나누고 단계별로 목표를 설정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했는가의 여부에 따라 2차 투자, 3차 투자를 진행한다. (시리즈 A, 시리즈 B 투자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50% 이상의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업 성장에 있어 창업자들의 의지와 역량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 창업자들은 그들의 기업이 성공할 것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증명해야 한다. 사업계획서는 단계별로 목표를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 투자자들은 아직 성숙하지 않는, 그러나 장차 어마어마하게 클 시장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렇게 큰 시장에 강력한 지배력을 가지게 될 기업을 찾는다. 초기 투자자들은 보통 10배의 투자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매출이익률이 높은 회사를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IT/SW 회사가 많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무척 실제적이다. 창업 기업의 가치 평가나 여러 번의 투자 과정 속에서 지분 희석이나 창업진 일부의 이탈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투자자들 사이의 갈등이나 여러 기업들의 사례도 소개되어 있었다. 창업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하다. 


기업이 어떻게 시작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인생 어떻게 될 지 모른다. 강력 추천한다. 





스타트업 펀딩 - 10점
더멋 버커리 지음, 이정석 옮김/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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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도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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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도정일(지음), 문학동네 





도정일 교수의 산문집을 읽었다. 다소(혹은 매우) 실망이다. 여러 일간지나 저널에, 마감 시간에 쫓겨 쓴 듯한 글들의 모음이기 때문이고 대부분 글이 발표된 시간이 꽤 지났다. 하지만 읽는 재미는 있었다. 글들 대부분 짧고 금방 읽힌다. 다만 깊이 있는 통찰을 느끼기엔 글들이 너무 짧고 그 때 그 당시에 읽어야 하는 시평時評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90년대에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도 그렇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떠나 서글픔마저 느끼게 했다. 몇몇 인용문들은 기억해둘 만했고 다소 긴 분량을 가진 몇 편의 글은 충분히 읽을 만했다. 


그러나 도정일 교수의 진면목을 느끼기엔 아쉬움이 많은 책이다. 아니면 나같은 독자가 읽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8점
도정일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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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의 세계사, 보르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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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의 세계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지음), 황병하(옮김), 민음사 (보르헤스전집1)





리타 기버트: 새로운 세대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보르헤스: 아니요. 그리고 저는 여타의 사람들에게 그 어떤 충고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내 인생조차도 겨우 간신히 꾸려왔으니까요. ... ... 나는 약간 표류하며 나의 삶을 살았지요. 



69세의 보르헤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충고를 할 수 없음,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 ... 


지난 설 연휴 읽었는데, 이제서야 간단하게 리뷰를 올린다. 그 사이 이 소설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보르헤스의 첫 작품집이다. 


직역하면 <오욕의 세계사>라고 부를 수 있는 보르헤스의 첫 작품집 <불한당들의 세계사>는 이후의 그의 소설 세계를 가늠할 많은 특징들이 씨뿌려져 있는 묘판과도 같다. (123쪽) 


역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문학 연구자에게 흥미롭겠지만, 이제 문학을 떠나 있는 나같은 독자에겐 호소력이 없다. 보르헤스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이 소설집은 그다지 재미 없었다. 보르헤스 팬들에겐 의미 있겠으나, 보르헤스의 세계를 제대로 알기엔 <픽션들>이나 <알렙> 같은 다른 소설집이 나아 보인다.  





불한당들의 세계사 - 8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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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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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글 소재, 혹은 주제를 떠올렸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대학 졸업하면서부터 시작했지만, 가끔 글도 참 못 쓰고, 지적 성실성도 지적 통찰도 없는 이들이 교수가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그럴 여유가 존재했더라도,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한다.


결국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동한다. 공동체는 무너졌고 쓸쓸한 개인만 남아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다. 지금 한국엔 너무 슬프고 화가 나는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지만, 내 일상에는 변화가 없다. 자본주의가 무섭다는 생각을 서른 초반에 했고 자본주의의 사슬에 매여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나를 마흔 초반에 발견했다. 쓸쓸하다. 





벚꽃은 어김없이 봄이면 핀다. 벚꽃이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그 때, 학교 교정에 벚꽃이 흐드러질 때, 나는 사랑을 하지 못했다. 봄 벚꽃과 내 사랑과는 그 어떤 연관도 맺지 못한다. 내 사랑은 계절을 벗어나 저 멀리, 외따로 있었다. 하지만 꽃은 쓸쓸하게 아름답고, 언제가 헤어지게 될 젊은 연인들은 부조리한 한 때의 사랑을 추억하기 위해 벚꽃 아래로, 아래로 몰려들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자, 하늘이 어두워졌다. 갑작스레 밤이 오고 예상보다 빨리 아침이 왔다. 오는 밤과 오는 아침 사이에 나는 끼여,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렸다. 도로는 축축했지만, 젖지 않았고 도시는 조용했지만 쉬지 않고 떠들었다. 대화는 없었고 일방적인 수다만 있었다. 나는 없고 너만 있는 봄이구나. 





퇴근을 하면 몸은 녹초가 된다. 녹초가 되는 만큼 마음은 투명해져, 어쩌지 못하는 밤이 된다. 시를 읽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 결국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싶지만, 예전만큼 건강하지 못하고, ... 실은 한 번도 건강했던 적이 없었다. 병든 현대인의 유머를 이해할 수 있는 축복을 얻게 되었지만, 술은 내 곁을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술 친구들 마저. 




늦은 밤,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결국 읽지 못하고 반납하게 될 몇 권의 책을 빌렸다. 오늘, 저 벚꽃도 마지막이다. 내년 저 벚꽃을 볼 때면, 즐겁게 술을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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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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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앤드루 포터 Andrew Porter (지음), 김이선 (옮김), 21세기북스 

http://www.andrewporterwriter.com/ANDREW_PORTER/Andrew_Porter_-_Writer.html




연거푸 영어권 작가들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 줌파 라히리, 앨리스 먼로, 그리고 앤드루 포터. 그들에게서,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차이보다 보이지 않는 공통점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사건들과 인물들을 사이에 서서, 그 숱한 감정들에 휩쓸리지 않으며, 쓸쓸한 냉정을 유지하며, 아파하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사랑을, 혹은 미래를 믿으며 살아가는(남는) 것... 어쩌면 21세기 초반 동시대 단편들이 가지는 특징일까.  


그리고 앤드루 포터에게서는, 사건 속에 있지만, 사건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판단내리지도, 결정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과 만나게 된다. 


절망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희망적이지도 않은 모습. 그렇게 그저 사라질 뿐인 우리들의 모습. 한때 마음 속 깊이 사랑했지만(아니면 사랑이 아닌 어떤 사랑인지도 모를), 단 한 번도 고백하지 못했던 불륜의 연인처럼. 



로버트의 와인을 마시면서 거기 어둠 속에 앉아, 결국, 어쩌면 몇 시간 동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결국에 나는 떠나야 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 131쪽 



소설 속에선 아직 추억으로 펼쳐지지만, 끝내 망각될 흔적이다. 


서로에게 입히는, 혹은 스스로 입는 상처에 대해 알지만, 아는 것과 그 상처를 치료하는 것, 그 상처에 반항하고 저항하는 것은 무관하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서로 다르고, 이제 만나지도 않는다. 아는 것은 그저 아는 것일 뿐이고 움직이는 것은 그저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빛과 물질은 다르고, 빛은 물질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빛이 한 번도 가 닿은 적이 없거나 물질이 빛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알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부정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그러나 견디기 힘든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무섭고,이미 떠나버린 그가, 그녀가 내 곁을 떠났음을 공식적으로 알려오는 것이 두려워, 내가 먼저 떠나는 것으로 꾸미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믿지만, 이젠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니다. 포스트모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 조금의 노력으로도 실체를 알 수 있음에도, 그래서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부정하는 것. 사랑 앞에서 사랑을 부정하는 것. 미래 앞에서 과거를 핑계삼아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 앤드루 포터의 소설들은 휴머니즘을 버리지 않지만, 휴머니즘 앞에서 한없이 주춤거린다. 그는 무척 힘들게 이 소설들을 썼을 것이고 지금도 참 고통스럽게 글을 쓰고 있을 게다. 


주춤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21세기의 도시는 우리에게 생의 열정 대신 병든 마음까지 치료한다는 정신의학과 배 고프면 언제든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편의시설들을 가져다 놓았으니,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나, 그걸 알고 있으나, 그것을 모르는(외면한) 상태다. 


끝없이 주춤거리다, 주춤거리다, 죽을 생이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못할 생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8점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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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백성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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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였나, 아니면 그 이전이었나. 정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아직도 시작하지 못했다. 마음 속의 분노와 절망은 너무 커져 폭발하기 직전이다. 오늘 광화문을 지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는 듯 사는 내가 미워졌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고 이젠 치료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건 아닌가 싶다. 조 단위로 해먹은 전직 대통령을 불러 조사하지도 못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이 그간의 갈등을 끊고 악수하는 자리에 한국 대통령은 없고 도리어 고산병을 극복하며 열정적으로 남미 외교를 하고 있다는 기사는, 대놓고 국민들을 무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고 한때 자신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던 정치인이었던 기업인이 억울해하며 자살을 해도, 그 지지는 쉽사리 누그러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나라에 미래가 있기라도 한 걸까. 


* *  


세상사에 무지하고 관심 없는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성군 따윈 없다. 아니 그런 성군이 있다 한들 그 성군 앞에 놓인 길은 가시밭길일 테니, 그가 성공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러니 백성들이 알아서 세상사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무지한 백성들로 가득 차 있는 듯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진짜라 믿고, 듣기 좋은 거짓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누군가를 향한 유언비어를 그대로 믿고 잘못된 소문이 진짜인 양 그대로 따라 하기 일쑤다.


동네 곳곳에 도서관이 생기고 인터넷으로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백성들은 도리어 더 무지해지고 있다.


모든 시대, 모든 국가에서 벌어졌듯이, 그 나라 백성들 수준에 맞추어 그 나라 정치도 이루어지는 법이다. 전제군주정에는 그 정치체제에 맞는 백성들이 있고 민주주의에는 민주주의에 맞는 백성들이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마치 전제군주정을 보는 듯하다. 이에 일부 사람들은 황당해하고 일부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수수방관이다. 수수방관하면서 TV를 보며, 아무 일 없는 척한다. 당연히 그들이 보는 TV 채널은 고정되어 있다.

 

내가 살아가면서 내일이 어제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어제보다 못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퇴보 중이다. 더 큰 문제는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관심 없다는 것이다. 


문제를 안다고 해서,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한국 사회는 정치적 문제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 만큼 체계적으로 변했다. 1970년대가 아니라 2010년대다. 연일 국가부채, 가계부채 이야기가 나오지만, 정부는 어떻게든 돈을 빌려가서라도 경기 부양을 할 태세다. 의도적으로라도 자산 인플레이션을 만들고 싶을 게다. 집값 오르면 부자가 된 양, 돈을 많이 쓰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서 있고 왜 세상이 갈수록 야박해지고 일상이 힘들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고, 이젠 던지지도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미 우리는 세상사의 무지함으로 인한 반쯤 노예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 노예들은 자신들의 처지와 무관하게 언젠간 배탈 나게 할 음식을 내어놓으면 좋아라 하고, 배탈나지 않는 법 같은 걸 이야기하면 화를 내고 ‘너 이상한 생각을 하는 놈이구나’라며 인신공격을 해댄다. 

 

이제 우리의 적은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 속의 무지다. 스스로 무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채널이 고정된 TV를 보면서 세상을 잘못 읽고 바라본다. 그리고 스스로 무지하지 않다고 확신하는 이들은 스스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이 나라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흥분하고 열을 내지만, 미래는 정해져 있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사라졌다. 


왜 사라졌냐고? 그건 제대로 된 정치 지도자를 선택할 눈도, 안목도 가지지 못한 우리들 탓이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폐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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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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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지음), 김난주(옮김), 바다출판사 




1.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

2. 가족, 이제 해산하자

3.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4.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5.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6. 신 따위, 개나 줘라 

7. 언제까지 멍청하게 앉아만 있을 건가 

8. 애절한 사랑 따위, 같잖다 

9.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10.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 이 책의 목차다. 정말 이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을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도 이십 여년이 지났다. 그의 소설, 투명한 서정성이랄까, 그런 느낌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의 산문은 거침없다. 그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문장과 달라,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런 각오로 소설을 써야 된다는 점에서 도리어 감동적인 면까지 있다. 그런 면이 잘 드러난 산문집은 <소설가의 각오>(김난주 역, 문학동네)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이 산문집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도 거침없다 못해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식상하다고!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나 '가족, 이제 해산하자'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초반에 언급된 가족 사회, 즉 필요에 의한 계약 관계로만 유지된다는 것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았다. 국가가 국민에게 관심 없는 건 다 아는 이야기고 직장인이 노예라는 거나 애절한 사랑에 대한 내용도 다 아는 내용이긴 매 한가지다. 


그런데 이런 식상한 이야기가 마음을 흔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 아니라, 마치 술자리에서 인생 선배가 말하는 느낌이랄까. 우리들은 종종 '알아, 그래 알고 있다고'라고 습관처럼 말하지만, 알고 있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알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 전부이지 않은가.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적어도 인생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살아볼 만한 것이 된다는 점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 8점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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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달력, 하기와라 사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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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달력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이제 우울한 벚꽃은 하얗게 썩어버렸다

마차는 덜컹덜컹 먼 곳을 달리고

바다도 시골도 고요한 공기 속에서 잠자고 있다

어쩌면 이다지도 게으른 날일까

운명은 연달아 어두워져 가고

쓸쓸한 우울증은 버드나무 잎 그늘에 흐려져 있다

이제 달력도 없다 기억도 없다

나는 제비처럼 홀로서기를 해, 그리하여 신기한 풍경 끝을 날아가겠다

옛날의 사랑이여 사랑하는 고양이여

나는 하나의 노래를 알고 있다

그리하여 먼 해초를 태우는 하늘에서 짓무르는 것 같은 키스를 던지겠다

아마 이 슬픈 정열 이외는 그 어떤 단어도 알지 못한다



- 하기와라 사쿠타로(지음), 서재곤(옮김), <우울한 고양이>, 지만지 

*   *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1886 ~ 1942)의 시를 읽는다. 사쿠타로도 오랜만이구나. '쓸쓸한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읽곤 아, 우울증은 쓸쓸했구나 라며 작은 소리로 되뇌었다. 젊은 시절의 사쿠타로도 꽤 쓸쓸했나 보다, 하는 생각도 잠시, 그의 말년은 일본주의자로 점철되어 있다. '일본 근대시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으나, 한국에 소개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1923년 시집, <우울한 고양이>



1924년의 하기와라 사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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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 피란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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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럴 겁니다! 백작은 이른 아침, 정확히 8시 반에 일어났다. ... ... 백작 부인은 목 둘레에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라일락 꽃무늬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 ... 테레지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 ... 루크레지아는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 ... 오, 세상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있습니까? 우리는 한줄기 태양광선을 채찍 삼아 쉼 없이 회전하는 보이지 않는 팽이 위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연유도 모른 채,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하면서, 우리에게 때로는 더위를 때로는 추위를 선사하고, 혹은 쉰 번쯤 혹은 예순 번쯤 회전한 후에는 죽음을 - 대개는 어리석은 짓만 범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 선사하기 위해 그저 그렇게 돌고 도는 데에 재미 붙인 양 미친 듯이 회전하는 모래 알갱이 위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것 아닐까요? 신부님, 코페르니쿠스가, 바로 코페르니스쿠스가 휴머니티를 더는 회복할 수 없을 만치 파괴시켰습니다. 우리가 이룬 그 모든 잘난 발명과 발견들로 인해, 어느덧 우리 자신이 무한히 작은 존재라는 새로운 개념에 서서히 젖어 들었어요. 그러고는 스스로를 우주 속의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자각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들 개개인의 불행뿐 아니라 인류의 총체적인 불행에까지요.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제 한낱 버러지들의 이야기에 불과해요. 앤틸리스 제도의 작은 재난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별거 아닙니다. 그 폴란드 참사회원의 주장대로, 아무런 목적 없이, 돌고 도는 데 진력이 난 가엾은 지구가 다소 인내심을 잃고 급기야 제 몸의 무수한 출구 중 한 곳에서 불꽃을 좀 뿜어내고 말았지요. 대체 무엇이 그토록 지구를 분노케 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지금보다 더 한심한 적이 없었던 인간들의 우매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만두죠. 햇볕에 그을린 무수한 버러지들. 그래도 우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 루이지 피란델로, <나는 故 마티아 파스칼이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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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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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작은 글 하나 써서 올릴 틈도 없는, 하루하루가 지난다. 낮엔 잠시 비가 왔고 우산을 챙겨나온 걸 다행스러워 했으며, 저녁엔 비가 그쳤고 손에 든 우산이 거추장스러웠다. 내 과거는 다행스러웠고 내 현재는 거추장스럽다. 


집에 와서 페이스북에 한 줄 메모를 남겼다. 


*   *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꿈을 현실로 만든다는 건 ... ... 반대로 현실을 꿈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현실을 꿈으로 만들겠다. ... ... 거참, 힘든 일이다.


*   * 


십수 년전부터 선배들을 따라 간 호텔 바를 얼마 전에도 갔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와인을 마셨다. 한창 와인 마실 때가 그립다. 그 땐 미래가 있다고 여겼다. 

갑작스러울 정도로 세상이 엉망이 되었다.


이젠 술을 마시기도 힘든 시절이 되었다. 내 몸도, 내 마음도, 이 시절도, 이 도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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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프로젝트 사무실, 쓸쓸한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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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 화창한 일요일, 사무실에 나왔다. 일요일 나가지 않으면 일정대로 일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애초에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잘못된 채 시작되었다. 하긴 대부분의 IT 프로젝트가 이런 식이다.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제대로 기획되었더라도 삐걱대기 마련이지.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사무실에 나와 허겁지겁 일을 했다. 오전에 출근해 오후에 나와, 여의도를 걸었다. 집에 들어가긴 아까운 날씨였다. 그렇다고 밖에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를 보러 가긴 너무 늦었고 ... 결국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책이나 읽다 들어가자 마음 먹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5월 햇살은 따스함을 지나 따가웠다. 봄 무늬 사이로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처녀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지만, 그녀들도 사랑을 잃은 날 밤, 쉬지 않고 울 것이고 결국엔 사랑을 믿지 못한 채 늙어갈 것이다. (이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지 


몇 개의 카페를 보내고 난 다음 빌딩들 사이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고 안에선 밖이 잘 보였다. 카페 밖엔 사람들이 없었고 까페 안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스타벅스 특유의 소란함이 커피 향 사이로 밀려나왔다. 


약간의 공포를 느꼈다. 아는 이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나는 내 고요한 휴식을 취하러 왔단 말인가.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카페에서 혼자 시간 보내기를 잘 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두 세 시간 동안 혼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고 온다고 하지만, 나는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하지만 미련스럽게도 자주 시도하지)


2.

카페의 소란스러움은 가라앉은 척 했다.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사물들의 소리와 뒤섞이며 공명했다. 소리들은 일정한 패턴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부딪혔다. 내 귀를 귀찮게 했고 얼굴을 때렸으며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창 가 자리를 앉으려 했지만, 슬픈 5월의, 따가운 햇살은 커다랗고 투명한 창을 그대로 지나 내 몸을 데웠다. 결국 그늘진 안 쪽 자리로 옮겼다. 


둥근 테이블에 앉아 다이어리를 꺼내 메모를 했다. 뭔가 근사한 문장을 적고 싶지만, 문장이 근사할 땐 오직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 사랑을 얻어낼 때 뿐이다. 문장은 차분한 사랑의 확신 속에서 대기 속으로 흘러나와야 하고 그녀는 그 흘러나오는 문장의 모습을 보아야만 한다. 이 순간, 진짜 사랑은 시작된다,고 믿었지만, 그 때 내 나이 27살이었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3.

중년의 사내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멍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두리번거릴 때, 그는 우연히 마주 치는 시선 속엔, 늘 말 못 할 비밀이 있거나 흐느적거리는 슬픔이나 터놓고 내뱉고 싶은 사연이 숨어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확고해질 때면, 황급히 책 속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옆자리에 앉은 이에게 다가가지 않는 용기를 발휘했다. 다행한 일이다. 


4. 

우리는 옆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타인이라고 여기지만, 언젠가부터 나 자신처럼 느껴졌다. 그건 나도 그들에게 익명이고, 그들 또한 나에게 익명이기에, 어쩌면 우리는 익명을 공유하는 하나의 거대한 자아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거대한 자아는 목적 없이 대도시의 대기 속을 새벽까지 떠돌다 알코올이 가져다주는 꿈 속으로 사라지겠지. (아, 지금은 아닌가)    





5.

카페에서 혼자 오래 앉아 있는 법이 없지만, 그래도 가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어떤 휴식들이 필요해서지만, 휴식을 취하고 나오는진 모르겠다. 다이어리를 꺼내 메모를 하기도 하고 가방에서 읽던 책을 꺼내 펼치기도 하지만, 1시간 이상 버틴 적은 없다.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집중해 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결국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듣지만, ... 재미없는 풍경 속으로 내 스스로 들어가는 꼴이다.


6. 

하지만 가끔 근사한 향기를 가진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가끔 삼성동에 갈 일이 있으면 에스프레사멘테 일리를 들리곤 한다. 길을 가다 무심코 들렸다는 듯 성의 없는 목소리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그러면 정말 근사한 커피가 나온다. 





7. 

쓸쓸한 일요일이다. 블로그에 글 하나 올리는 것도 이렇게 어렵다. 마음은 어수선하고 몸은 피곤하기만 하다. 나라는 엉망이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다들 알고 있을 텐데, 저러는 걸까. 아니면 정녕 모르는 걸까.


최근 들어 자주 주말에 나가 일하게 된다. 단기 목표는 있으나,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내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진다. 마음은 아직도 스무살 때처럼 정처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는데, 술 마실 친구들도 드물고 술 마시는 것도 부담스러운 노화가 시작되었다. 거참. ... 어느새 일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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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Downsizing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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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Downsizing Democracy 

매튜 A. 크렌슨, 벤저민 긴스버그(지음), 서복경(옮김), 후마니타스 


 




 




몇 년 전부터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정치(政治)란 무엇일까?’ 


이 물음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 정치학 관련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더구나 내가 정치에 대해 알아가는 속도보다 한국 사회가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어떤 식으로 무너지는가에 대해 기술할 필욘 없다. 정권의 나팔수 비슷하게 변해버린 주류 언론의 눈에도 한국 사회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 정도이니까. 


그렇다면 단 두 정권 만에 이토록 퇴보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만 퇴보라고 여기는 것일까? 슬프게도 나는 '나만 퇴보라고 여기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 생각, 한국 사회는 절망적일 정도로 퇴보하고 몰락해가고 있다는 현실 인식은 지극히 소수에게만 공유되고 전파된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 책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읽으면서 더 강화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개인이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  대부분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절망적인 것이다. 한국 사회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된 것이다. 정치 시스템의 문제, 잘못된 정책이나 정치적 의사결정의 문제가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치부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 시스템, 정치 리더들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인해 생긴 문제라고 여기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더 나아가 이 사회가,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왜 정치가 엉망이 되는가에 대해 의문을 느끼고 그 해결책이나 실천을 고민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소수마저도 가난의 문제를 비껴서 생각하고 실천한다는 점은 더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좀 긴 인용이 되겠지만, 저자들의 인식은 정확하다. 



미국 주류 자유주의 최근 경향은 ‘탈물질주의’다. 이것은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을 인도하는 강력한 공적 이념과 짝을 이루는 민간의 이념이다. 탈물질주의는 특수 이익의 지저분한 난투극을 초월한 양, 허공에 붕 뜬 채로 삶의 질을 강화하는 데 시선을 둔다. 이때 많은 경우 경제적인 사안은 고려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고래와 야생동물 보호, 여성의 선택권 보장, 자존감의 형성, 에너지 보존, 정치 자금 제도 개혁에는 찬성하고,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근본주의적 불관용, 해양굴착, 동성애자 배척, 총기 사용 규제 완화 로비에는 반대한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지지자들은 저마다 나름의 고상한 명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명분들은 대부분 ‘고상하다’. 하지만 그것은 풍족한 사람들의 명분이다. 

탈물질주의는 가난을 비껴간 시민들의 신념이다. (…) 중도좌파가 공공정책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혜택에 관심을 갖지 않을 때, 이들은 궁핍한 환경에서 살아가며 침묵하는 시민들(빈곤층 뿐만 아니라, 제조업이 쇠락하고 고등학교 졸업장이 더 이상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지 않는 경제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노동계급 가정들)과도 멀어졌다. 

- 414쪽 ~ 415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때 ‘탈정치화’니 ‘탈역사화’니 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수입하고 번역, 전파하던 일군의 인문학자들과 그들의 학생들이 떠올랐다.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자임을 느끼게 할 정도로 정치적 발언을 하며 진보적인 학자나 그들의 저서를 소개하는 이들이,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자들까지 칭찬하며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적 입장과 학적 태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 솔직히 말해 지적으로 허술하며 현실에 대한 책임감마저 없음을 드러냈지만, 이와 상관없이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애초에 현실에 대한 무책임함과 천박한 상황 인식 하에 ‘비판적이고 선진국적인 학자 이미지’를 소비하고 싶었던 것이다. 


동시에 ‘강남좌파’라는 단어도 떠올렸다. 이 단어는 ‘강남 = 우파’에 대응해 만들어졌다. 아마 강남에 거주하는 진보적 지식인이나 야당 지지자들을 위해 급조된 단어처럼 보이지만, 강남이라는 단어에 덧씌워진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하지만 강남좌파들은 결정적으로 가난을 비껴서 있다. 이들이 관심 가지는 것은 미국 자유주주의자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익 봉사나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겠지만 그들도 ‘탈물질주의’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나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나는 학자도 아니고 강남에 거주하지도 않는다(못한다). 그러나 내가 만나고 교류하는 이들 대부분은 서울이나 수도권, 혹은 해외대학을 나와 스스로 진보적이라 여기는 전문직 종사자들이나 직장인들이다. 난 이미 닫힌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즉 다른 생각, 다른 환경, 다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도 없고 그런 환경을 만들지도 않고 만들 생각도 없거나, 만들기 위해 내가 감소해야 될 정치적, 경제적 위험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나도 이미 ‘탈물질주의’화된 셈이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만날 일도, 그들과 대화할 일도, 그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봉사할 수 있고 세상이 그런 것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시스템의 문제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 문제가 되었다. 이는 복지의 문제와도 다른 것이다. 


*    *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



이 문장을 읽고 난 다음 다소 놀라웠다.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나온 발언인데, 과연 그럴까? 세월호 이후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저 문장은 그 어떤 호소력도 가지지 못한다. 국가의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최근 수십년 동안 평범한 미국인들은 시민에서 ‘고객customer’이라고 불리는 존재로 변해왔다’고 지적한다. ‘교육수준의 상승과 정치참여의 하락’이 서로 결합되었음을 분석한다. 



개인민주주의는 집단적 공격으로만 돌파할 수 있었던 정치의 장벽을 낮춘다. 정보의 자유, 정보공개법, 공청회 의무화, 입법 예고제와 공개 설명회 규정, 위원회 등의 ‘시민’ 대표 할당제, 공공기관의 ‘전화상담서비스’,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복지 서비스 등 이 모든 것과 기타 정책들은 시민들이 혼자서 정치를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외견 상 시민 친화적으로 보이는 개인민주주의의 이런 장치들이 갖는 주된 효과는 미국에서 시민의 역할을 위축시켰다는 점이다. 

- 43쪽 



이제 이 사회의 잘못된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집단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집단 행동의 정치적 파급력도 위축되어 설녕 집단 행동이 있었다고 한들 정부나 정치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언론은 이미 언론의 사명이나 진실이니 하는 걸 버린 지 오래 되었다. 그러니 고객이 된 시민들이 두드릴 수 있는 곳은 청와대 신문고나 공공 기관의 민원 게시판, 또는 다음 아고라다. 


애초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만든 것이지만, 도리어 정치적 무관심을 만들고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켰다. ‘정치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으로 변형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당을 지지하지도 정당 사무실을 나가 정치인을 만나지도, 사람들을 모아 시위를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대다수의 문제들은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와 비슷하게 ‘정치엘리트들도 유권자를 동원하지 않고도 자신의 정책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찾았다’. 도리어 높은 투표율은 정치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고객이 된 시민들도 투표하지 않는다. 투표의 효과는 거의 없고 민원 게시판의 효과는 직접적이다. 그 효과가 더 큰 것은 소송이 될 것이다.



1970년대 ‘새로운 정치’에서, 그런 상상된 유권자 집단들은 공익단체라는 형태로 현실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실제 공익단체에 대한 대중의 참여는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이 단체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거에서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행정기관을 접촉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

모든 사람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명분 아래 공익단체는 특정한 누구와도 거리를 두었다. 그 결과 한정된 유권자 집단을 동원하지 않고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찾아야 했다. 

- 148쪽 ~ 149쪽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민 집단을 상상적으로 구성한다. 하지만 그 속에 속한 시민들은 그저 메일링리스트로만 존재한다. 실제 만날 일도 없고 만나지도 않는다. 온라인 공간이 있으며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 도대체 시민들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시민들은 여론 조사 속에 숨어 있었다. 



2억 5천만 미국인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설문조사는 겨우 무작위로 추출된 응답자 2~3천명의 인터뷰 결과일 뿐이다. 나머지는 통계적으로 또는 ‘가상적으로’ 대표된다. 그들은 인터뷰의 불편함조차 견딜 필요가 없는 것이다. 

- 190쪽 



수학적으로 옳을 진 모르지만, 그것이 현실의 반영이라고 우긴다.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정치적 의사결정을 한다. 이게 과연 옳은 것일까? 



통계학자들은 여론 조사를 ‘참견하는 측정 obtrusive measure’이라고 부른다. 여론조사는 단순히,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의 연속성과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여론조사는 개인의 의견을 모으는 방식을 정의한다. 예컨대 여론조사에서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의견 간에 비중의 차이가 없다. 또한 여론 조사자들은 여론이 판단해야 할 주제를 선택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설문 조사로 기록되는 데이터는 ‘순수한’ 여론이 아니라, 여론을 가진 사람과 여론조사자의 상호작용이다. 설문조사가 여론을 측정하는 동시에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 189쪽 ~ 190쪽 



여론조사에 대한 저자들의 견해를 조금 더 인용해본다. 



여론조사는 시민의 입장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들어주기 원하는 바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들이 시민의 의견 가운데 듣고 싶은 것을 말해준다. 그 결과, 여론조사는 여론을 공표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설득하는 과정의 한 단계로 자리잡는다. 여론조사는 여론 관리를 위한 도구인 것이다. 

- 195쪽 



여론조사를 통해 너무도 신중하게 걸러진 이런 가상 시민들의 견해에는, 한때 여론을 중요한 정치적 현상으로 만들었던 특징들이 빠져 있다. 강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은 수의 무관심한 사람들 속에 묻혀 버린다. 집단과 집단성은 개체화되고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약화된다. 마침내 시민은 고객의 지위에 걸맞게, 의뢰자의 설득에 따라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수 있도록 설계된 여론 조사의 대상이 된다. 정치적 변방에 갇힌 이들 가상의 시민은 참여하도록 초대받지 못한 채 정치투쟁을 그저 구경만 할 수 있을 뿐이다. 

- 198쪽 




이 책의 상당 부분은 개인적 차원으로 내려앉은 민주주의와 '정치동원political mobiliztion'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왜 미국 민주주의가 나빠졌는가'를 분석한다. 놀라울 정도로 한국 민주주의와 닮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절망했다. 2004년도에 나온 책이니, 10년이 지난 셈이다. 국내 번역된 건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이 책은 '물질적 필요가 너무 중요하고 절실해서 탈물질주의를 향유할 능력이 없는, 정당이 보내는 우편 목록에조차 이름이 올라 있지 않고, 투표하지 않아도 굳이 관심 가져 주는 이가 없으며, 자신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이익집단으로부터 초대받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대표해 진행되는 집단소송의 원고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 있지 않으며, 그저 여론조사로 대표되는 가상적 시민virtual citizen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또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나라를 위해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애국적 열정을 간직하고 있고, 이따금씩 역사에 나타나는 '열정의 순간'을 함께 하지만, 곧 부모이자 생활인으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 역자 후기, 443쪽 




가상적 시민으로만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하는 건 일종의 계몽주의일까. 한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이 책을 읽고 그들의 전략을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전략 속에 평범한 사람들은 속해있지 않다. 몇 백년 전에도 그랬으니,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실은 지금 한국 민주주의에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 책의 내용으로 한국사회를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조차 한국 사회에는 너무 과분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10점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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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정오의 한강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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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장의 사진, 몇 줄의 문장, 몇 개의 단어, 혹은 유튜브에서 옮긴 음악,으로 내 삶을 포장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진 못한다. 점심 식사를 하고 한강시민공원까지 걸어나갔다. 평일 점심은 텅비어 있었다. 낯설었지만, 원래 모습이었다. 자연스러웠지만, 약간의 공포가 밀려들었다. 




지나치게 낯선 느낌은 자연스럽게 두려움이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건 바로 모든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의 그런 것과 비슷해 보인다. 


그렇게 이 지구에 인간들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평화로울까. 마치 그것은 고대의 평화를 연상시키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기묘한 평화. 아니면 우주에 나간다면 그걸 경험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걸 경험하는 순간, 숨막히는 듯한 공포를 느낄 것이고 우리의 사랑은 산산조각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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